한국기독교학회 학술대회 강연 - 인간파괴성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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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학회 학술대회 강연 - 인간파괴성의 변형
  • 승인 2002.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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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대방을 악이라고 부르면서 우리 자신의 눈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둘로 분단된 국가들은 우리의 내면에서 발생한 분열을 허가해 준다. 우리의 내면에 갇혀있는 파괴성은 계속해서 바깥의 적을 만들어 내고, 우리가 그 적에게 우리의 파괴성을 투사하는 동안 그 파괴성은 더 무서운 것으로 자라게 된다.

파괴성은 무의식 안에 갇혀 있게 되며 보다 원시적인 형태로 퇴행되고 더 많은 불안을 생성해 낸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악의 건설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우리의 이웃을 악 그 자체라고 부르게 된다. 수용되지 못한 인간의 파괴성은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파괴성의 변형은 우리와 타자들 사이의 공간에서 일어난다. 종교는 이것이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 공간은 우리가 아무것도 분열시키지 아니한 채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의존할만한 곳이어야 한다.
위니캇의 이해에 따르면 우리와 타자 사이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파괴성의 변형은 두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타자, 대상 또는 하나님이 우리의 투사에 달려있지 않은 진정한 실제 그 자체로서 우리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파괴되고 그 대신에 우리는 진정한 타자와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타자들이 그 자체로서 진정한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자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을 투사하여 적을 만들어내는 일을 중단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가 원하는것을 해주어야만 하는 신들로 만들고 그것들이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그 신들을 죽여버리는 일을 그만 두게 된다. 타자들을 우리의 욕구에 따라 사용되고 통제되면 드높여졌다가 끌어내려지는 우리 자신의 확장으로서가 아니라 그들 자체의 권리를 지닌 독립된 주체들로 보는 것은 평화를 위한 진정한 가능성을 향한 먼길의 첫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우리는 타자들과 현실을 공유한다. 이 현실로부터 우리 사이에 상호의존성과 공동체가 건설된다. 타자들을 우리와는 다른 살아있는 실재로 보는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요소다.
우리는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신뢰할말한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무자비한 본능적 공격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상상력을 통해서 감당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타자가 보복하거나 상처받고 철수하거나 태도를 바꾸지 아니한 채 스스로 이 모든 것들을 살아남아 거기에 있으면서 우리가 입힌 손상을 보상하고자 하는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탄력성 있게 수용해 준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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