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율법, 지켜야 하는가, 버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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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과 율법, 지켜야 하는가, 버려야 하는가?
  • 승인 2001.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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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완성은 “성령을 통한 사랑의 실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인간을 죄와 사망가운데서 구원한고 율법의 본질을 회복함
예수님 고별선교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과 함께 보혜사 성령의 임재를 약속

III.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창 22:18)라고 약속하였을 때, 그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갈 3:16).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먼저 율법을 통한 구원의 길을 주셨는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율법에 불순종하여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차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통한 구원의 길을 주셨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율법에 앞서 언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하시고 회복하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들이 율법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자신의 신실하신 약속을 계속해서 유지하시고, 마침내 때가 되어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곧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든 이방인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간의 몸으로 보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의 범죄로 인하여 받아야할 저주와 죽음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게 하셨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로마서 8:3-4절과 갈라디아서 3:13절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든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 받아야 할 모든 저주와 죽음의 심판을 예수님에게 쏟아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이 지키지 못했던 율법을 그 자신이 친히 완전하게 지키셨다. 마태 복음 5:17절 이하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하게 하셨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불순종함으로써 본래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수단으로 주어진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 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약속된 의와 구원과 축복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어진 율법을 죽음과 저주를 가져오는 율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죄와 사망을 가져오는 율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회복시키셨다.

하나님은 출애굽사건 보다 더 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을 통하여 죄와 사망과 저주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신실한 언약을 유지하셨다.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주어진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키지 못하였으며, 그래서 본래 축복을 가져다 줄 율법이 오히려 저주와 죽음을 가져다주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율법을 회복시켜 그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이 되게 하셨다.

IV. 율법과 신자들

이처럼 율법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과 성령의 법, 그리스도의 법이 되었기 때문에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구약의 율법은 결코 폐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율법은 완전케 되었고, 새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법으로 회복되었다. 그럼으로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구약의 율법은 결코 폐지되거나 무용지물이 된 것이 아니다.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

그렇다고 해서 신약의 성도들이 율법에 대하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의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설사 그들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할찌라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에서 죽음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상실하거나 저주 아래 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친히 담당하시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신약의 성도들은 더 이상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처럼 완전하게 지켜져야 할 시내산의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미 완전하게 지켜진 율법 아래에 있다.

따라서 신약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율법은 이미 지키진 율법이며, 이미 성취된 율법이고, 생명의 성령의 법, 그리스도의 법으로 새롭게 회복된 율법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의 성도들을 향하여 율법을 행하라, 율법을 지키면 축복을,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저주와 사망에 처하게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나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나 한 가지 변하지 않고 있는 근본 사실은 율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이 되게 하거나 구원을 받는 수단이 아니고, 오히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수단으로 주어졌다는 점이다. 율법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원리로 주어졌다는 점에서 율법은 구약시대는 물론 신약시대에도 유효하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근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바로 왕의 손에서 구원받은 백성이었기 때문인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근본 이유도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 곧 율법의 핵심 요지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할 근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다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율법을 새 계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표현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왕에서 구원하여 내어 자신의 백성으로 친히 다스리시는 시내산 사건의 표현인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표현이요,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한 십자가 사건의 표현이다.

신약의 성도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십자가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안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이다.

V. 성령과 율법

그렇다면 신약의 성도들이 어떻게 십자가 사건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표현인 율법을 지킬 수 가 있는가? 출애굽 사건을 친히 경험하고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불순종하였는데 어떻게 신약의 성도들이 율법에 대하여 순종할 수 있는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율법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켜졌고, 율법의 모든 요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율법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율법의 항목을 세세하게 제시하면서 이 모든 것을 지키고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 성경은 율법과 관련하여 율법의 총체적 요약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한다.

즉 율법을 사랑의 계명으로 압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을 성취하라고 명령한다. 이 사랑은 바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반사이다. 즉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에서 실천할 때 율법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롬 13:8-10; 갈 5:13-15).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 자로서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랑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는가? 바울 사도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면, 곧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되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갈 5:13-6:2).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면 십자가 사건의 표현인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지만, 성령을 따라 살지 않게 되면 사랑과는 정반대가 되는 서로 미워하고 물고 먹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이미 구약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 지니라”(겔 36:27)는 말씀 속에 약속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별설교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과 함께 새 계명을 성취할 수 있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신약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진 보혜사 성령의 선물이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자율에 맡겨졌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의 경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미 성취하신 율법을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실현해 갈 수 있도록 생명의 성령이 주어졌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령을 통하여 율법을 성취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언약과 구분하여 ‘새 언약’이라고 부르고 있다(렘 31:33).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아무리 율법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율법주의에 빠질 수 없는 것은 그 율법의 내용이 십자가 사건, 곧 십자가 복음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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