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은 절실한 생명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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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은 절실한 생명운동이다
  • 승인 2002.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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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환경오염은 인류와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환경오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더 다른 방향에서 환경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환경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먹는 물이나 마시는 공기가 더러워져서 건강을 잃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은 다른 말로, 자연이고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세계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지으신 창조 세계가 파괴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관리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사람들이 풍요로움에 집착하고 편안함에 길들어져 무절제하게 자연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자연 파괴는 인간들의 탐욕과 오만과 교만함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경오염은 과학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죄의 결과다. 파괴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철저히 회복되어야만 한다. 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오염이라고 하면 흔히 물, 공기, 흙의 오염 등을 들고 있는데, 근래에 와서는 이런 국지적 환경오염이 아닌 지구적 환경오염이 생태계와 자연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다. 예를 들면,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생태계 돌연변이. 특히 이 같은 환경오염 가운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환경 호르몬이라고 불려지는 물질이다.
환경 호르몬의 정식 명칭은 ‘내분비 교란 화학 물질’로, 동물의 몸에 들어가서 호르몬과 비슷하게 작용해, 원래 호르몬의 절묘한 분비 타이밍을 교란시켜, 생식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고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물질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다이옥신’으로, 인체에 유입되는 몇가지 과정이 있다. 농작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제초제나 농약이 작물에 남아서 음식물을 섭취할 때 몸 속에 축적되는 경우가 있고, 합성수지에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비닐 제품을 음식물의 용기로 사용할 때 용기의 성분이 음식에 녹아서 몸에 들어오는 경우, 또 플라스틱 장난감을 아기가 입에 넣고 빨 때 오염되는 경우 나아가 식품의 동물성 기름기에 용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환경 호르몬은 지방분에 축적이 되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가열할 경우 더 많이 유출되므로 플라스틱 그릇에 들어있는 음식물을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가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환경 호르몬의 유입 과정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편의주의에서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현대의 풍요로운 물질 문명은 결국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상업성이 선전하는 것은 흔히 배금주의(mammonism)라고 할 수 있으며, 경건과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맘몬(mammon)과 하나님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환경 호르몬은 물질을 추구하는 자에게 죽음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 환경 운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자연 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까지 회복하는 것으로 경건함과 도덕과 그리고 윤리의 회복까지도 포괄하는 전통적인 자연회복 운동이다. 환경 호르몬은 어쩌면 하나님이 인간들에 대해 내리시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기독교인이 되자.

하나뿐인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물질의 소비를 줄이는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에덴동산이 선악과 사건으로 파괴됐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어(요 3:16)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만물이 회복되게 하셨다(골 1:2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환경보호운동은 궁극적으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물론, 우리 자신의 영적·육적 생명도 새롭게 할 수 있다.

박대훈목사(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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