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당 5락’에 ‘후불제’까지, 인지상정으로 죄를 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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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당 5락’에 ‘후불제’까지, 인지상정으로 죄를 포장하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1.02.16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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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늪에 빠진 한국 교회 (1) - 단체와 교단에 만연한 금권선거 얼마나 심각한가

▲ 한기총 갈등을 시작으로 한국 교회 안에서 각종 비리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광선 한기총 전 대표회장 양심선언 후 금권선거 논란 일파만파
단체 교단 모두 도덕 불감증 심각…제비뽑기, 맛디아 등 대안 속출

한기총 이광선 전 대표회장의 양심선언이 세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문으로만 무성한 ‘돈 선거’의 실체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이광선 목사는 지난 9일 “한기총이 금권선거로 병들었다. 나 또한 흙탕물에 몸을 담그고서야 대표회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며 선거과정에서 돈을 뿌렸음을 고백했다. 그는 또 “죄의 고백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그로 인해 한국 교회를 향한 비난이 빗발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길자연 대표회장 당선 이후 과거 한기총의 연장을 시도하며 혼란의 중심에 선 이광선 목사의 이같은 ‘양심선언’을 두고 교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기총 전체가 곪았다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현재 집행부 역시 ‘똑같은 부류’라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한기총의 치졸한 싸움을 뒤로 하고서라도, 이광선 목사의 양심선언은 일단 소문으로만 떠돌던 금권선거의 진실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동안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가 진행될 때마다 ‘이번에는 얼마나 쓸까’라는 의혹들이 있어왔다. 일각에서는 ‘10당 5락’이라는 말로 10억에 가까운 돈이 뿌려진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후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3억원은 선거 비용으로 들어간다는 소문이 퍼진 바 있다.

문제는 금권선거를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과연 교단과 단체의 선거전에 얼마나 많은 돈이 뿌려지고 이로 인한 폐해는 얼마나 되는지 돌아보아야할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 한기총 금권선거의 실체
지난 12월 치러진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삼엄한 감시가 있었다. 이미 두 차례 대표회장을 역임하고 또 다시 출마한 길자연 목사를 겨냥한 선거감시 활동이 눈에 띄었다. 당시 한 실행위원은 “올해는 감시가 심해서인지 돈 선거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은 것 같다”고 귀뜸했다. 그러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선거가 끝나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선불이건 후불이건 ‘돈’이 오간다는 정황은 인정한 셈이다.

한기총 대표회장이 처음부터 직선제로 선출됐던 것은 아니다. 10여년 전만해도 주요 교단 총무들이 인선위원으로 참여해 교단 증경 총회장을 중심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한기총 규모가 커지고 대표회장 직선제로 돌아선 이후 금권선거의 늪은 깊어져갔다. 여기에 선거철만 노리는 ‘꾼’들이 합세하면서 금권선거는 혼전을 거듭했다.

한 실행위원은 “많게는 양쪽 후보로부터 50만원씩 두어 번씩을 받는 사람도 있다”며 “표를 두고 돈과 딜을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한기총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표를 몰아주는 몰이꾼의 경우 더 큰 ‘몫돈’을 챙기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후보당 최소 2억에서 많게는 5억까지 뿌린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여기에 선거철만 되면 조직되는 정치그룹도 가세한다. 지역별 모임과 목회자 모임, 군소 교단 목회자 모임 등 각종 단체들을 만들어 표를 몰고 다닌다. 학연과 지연 등은 선거 때 가장 많이 악용되며 최근에는 입김이 강해진 군소교단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

# 교단도 돈 선거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6월 예장 통합 소속 64개 노회장들은 전국노회장협의회 결의대회를 열고 교단 지도자 선출과정에서 나타나는 금권선거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노회장들은 “우리 교단의 부총회장 선거 과정이 세상의 선거보다 못한 불법으로 얼룩져 있다”며 “교회의 헌금이 총회 임원 선거에 쓰이는 것을 반대하며 금권선거 근절을 위해 노회장들이 먼저 나서서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노회장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성명까지 발표한 배경에는 통합 내에 오랜 금권선거의 아픔이 담겨 있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장자교단 통합도 금권선거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교단마다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크고 작은 금권선거 움직임은 대부분 감지된다. 그나마 깨끗하기로 소문난 기장도 최근에는 식사접대 혹은 거마비조의 돈 봉투들이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선거제도 공청회를 열었던 기성총회는 “교단 안에서 ‘2,3,5’라는 표현이 떠돈다”고 말한 바 있다. ‘2,3,5’는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20만원, 중간에 30만원, 막판에 50만원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기성 한 관계자는 “문제의식 없이 선거 때만 되면 돈 봉투를 주머니에 담는 것 같다”며 “그만큼 무감각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단 금권선거의 유형도 가지각색. 노회 추천 후 가을 총회 때까지 교회로 강사를 초청해 사례비를 지급하거나 각종 모임에 후원금을 조달하는 방법과 선거 직전 수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 돌리는 일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선거전을 치룬다. 이미 총회장 혹은 단체장에 출마하면서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가까운 발전기금과 등록금을 낸 후보들은 막대한 선거비용까지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

이처럼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감증’에 빠진 금권선거. ‘인지상정’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 “나를 찍어준 사람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되느냐”는 반문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돈’으로 선거를 치루는 것은 ‘만악의 근원’이 된다는 점에서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 돈으로 자리를 얻을 경우 그에 따른 대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권을 노리는 사람과 대가를 바라는 사람, 공로자에 대한 인사까지 한 마디로 ‘투명성’과는 거리가 먼 행정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금권선거는 반드시 막아야할 절체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 금권선거 막자 ‘고육지책’ 쏟아져
금권선거에 대한 고민에 가장 먼저 마침표를 찍은 교단은 예장 합동이다. 합동은 올해로 제비뽑기 시행 10년째를 맞는다. 합동은 제비뽑기 도입 후 금권선거가 사라졌다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다. 예측 불가능한 후보가 출마하고 당선이 되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아쉽다”는 반응이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제비뽑기를 폐지하고 직선제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지난해 열린 총회에서는 제비뽑기와 직선제를 혼합한 선거방식이 통과 직전에 부결된 바 있다.

기성총회도 금권 선거를 막기 위해 예비등록제를 실시했다. 총회 임원 출마 의사가 있는 후보는 사전에 등록해야 하고 이 가운데 지방회를 거쳐 정식 임원 후보가 결정된다. 지난해 5월 정식 통과된 입후보 예정자 사전등록제는 총회가 열리기 무려 8개월 전에 등록을 마침으로써 불법선거에 대한 감시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입후보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의 경우 법이 정한 선거운동기간 직전에 사전 포섭에 나서기 때문이다.

통합은 지난해 열린 95회 총회에 맛디아식 선거제도를 상정했다. 맛디아식 선거제도는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자살로 12제자 중 한 명이 부족하게 되자 성도들의 추천을 맞아 요셉과 맛디아 두 명의 후보를 놓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선출한 사도행전에서 찾아낸 것. 당시 예장 통합 손인웅 목사는 “대의정치에 입각한 직접투표라는 점에서 장점은 있지만 선거과정에서 불법을 야기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며 “현행 틀에서 가장 성서적인 맛디아를 도입해 보완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제도는 총회에 상정돼 직선으로 2명을 뽑고, 최종 투표는 제비뽑기로 진행하자는 내용으로 1년 연구 후 결정하기로 했다.

맛디아식 선거제도는 지난 11일 열린 한기총 정관개정 공청회에서도 제안됐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장치는 ‘차선’일뿐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 교계 대다수의 시각이다. 선거방식의 보완보다는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의 의식개선과 금권선거 감시활동의 강화, 징벌조항 확대 등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금권선거로 도마 위에 오른 한기총의 경우 ‘불법선거운동이 있다는 고발이 있고 사실이 확인되면 재적위원의 3분의 2 이상의 결의로 후보 자격을 상실케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더 이상 추가 징계 조항은 없다. 금권선거 소문이 무성한 지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고발도 없었고 징계도 없었다. 부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양심’이 없었던 것이다.

온 세상에 알려진 한국 교회의 금권선거 문제. 교단과 단체 곳곳에서 나타나는 총체적 문제를 ‘체감’했다면 교회는 다시 거듭날 수 있다. 금권선거를 우려하는 회개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선거기간 중 실체를 알리는 양심선언이 많아진다면 금권선거의 종말은 머지않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권선거=죄’라는 등식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

한 목회자는 “세상의 법과 기준보다 타락한 한국 교회의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며 “진정한 개혁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성경으로 돌아가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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