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면죄부 팔았다면, 지금 교회는 직분 매관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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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면죄부 팔았다면, 지금 교회는 직분 매관매직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10.13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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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사회’ 열풍 속 과연 교회는 공정한가 ④ - 임직식 거액 헌금 관행 문제점

▲ 참된 직분자를 세우지 못한 교회는 올바른 교회 운영을 기대할 수 없다.

관행처럼 굳어진 임직헌금 강요, 돈 없으면 장로 못해
내는 성도도 받는 교회도 불공정 후유증 피할 수 없어

■ 충남 공주의 A 교회 아무개 집사(35세). 그는 안수집사 임직식을 며칠 앞두고 교회 인사위원회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에 임직을 포기할 생각이다. 안수집사로 임직하기 위해 500만 원 이상의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 올해 초 새로 집을 장만하느라 대출 이자도 매달 나가는 상황에서 목돈 500만 원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돈을 내고 안수집사가 된다는 것이 왠지 부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전남 광주의 B 교회 아무개 집사(여, 63세). 그녀는 수년째 권사 임직을 하지 못해 오랫동안 섬겨온 교회를 떠날까 고민하고 있다. 권사 임직을 위해 교회에 건축헌금 1천만 원을 내야한다는 교회 전통 때문. 남편을 사별하고 정부의 생활보조금과 자식들 용돈으로 생활하는 처지에 이처럼 큰 목돈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그녀와 비슷한 나이의 성도들은 이미 권사 임직을 받았지만,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그녀만 권사가 되지 못해 왠지 자괴감마저 들었다.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워 요즘은 교회 다니는 것조차 겁이 난다.

■ 서울 잠실의 C 교회 당회는 최근 교회를 건축하면서 새롭게 임직자를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권사 임직은 1천만 원, 장로 임직은 2천만 원을 각각 책정해 대출 이자로 인해 부족해지는 교회 재정을 충당하기로 한 것. 젊은 나이에 건실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아무개 집사(45세)는 당혹스럽다. 이 교회에 온지 몇 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관계자로부터 헌금을 내고 장로 선거에 나올 것을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위 사례는 한국 교회에 관행처럼 뿌리내린 임직식 거액 헌금이 공정한가에 대한 논의를 위해 대표적인 갈등을 소개한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임직을 받을 때 헌금이나 헌물을 요구하는 교회는 많다. 그 액수도 적게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건축헌금, 선교헌금 등 에둘러 내도록하는 경우도 있지만, ‘임직헌금’을 공개적으로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로는 교회의 전통으로, 또는 감사의 표시로 임직 시 헌금을 낸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거액을 내고 임직을 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른바 항존직이라고 불리는 안수집사, 권사, 장로 직분은 교회의 핵심 직책. 임직 헌금의 전통이 있는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는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직분을 맡을 수 없다. 교회 입장에서는 자발적인 헌금이라지만 돈을 주고 직책을 사는 매관매직이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부이지만 교회 빚을 변제하는 조건으로 직분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재정으로 직분을 산 장로는 그 재력을 바탕으로 교회 내에서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교회 내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간여할 우려가 크다.
참된 직분자를 세우지 못한 교회는 참된 경건의 모범을 제시할 수도 없고, 올바른 교회 운영을 기대할 수도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는 이 같은 관행은 교회 내에서 ‘장로가 되려면 뭔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장로에 대해 ‘존경심’보다는 ‘경제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장로 스스로도 ‘내가 교회에 이렇게 많이 했는데’라는 생각을 갖게 돼 교회의 공정한 운영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임직 시 거액을 헌금하는 것에 대해 정준경 목사(뜨인돌교회)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한국 교회만의 전통이라고 말한다.

정 목사는 “한국 교회의 임직 문화를 통해서 맘몬의 위력이 교회를 더욱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교회에서 인정받으려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 나는 돈이 없으니 교회 가기 싫다’고 말하는 지경”이라고 현실을 개탄했다.

정 목사는 이어 “16세기의 타락한 교회가 면죄부를 팔았다면, 우리 시대의 타락한 교회는 직분자를 세우고 돈을 요구하고 있다”며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고 돈을 받는다면 목사와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성도를 죽이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임직식 거액 헌금 관행은 헌금을 강요하는 한국 교회만의 풍토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헌금 강요 풍토에 대해 남오성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는 칼럼을 통해 “헌금은 능력껏, 부자는 많이, 가난한 자는 적게 하면 된다. 자기 소득에 비례하여 바치면 된다”고 지적하고 “초대 교회 때, 유대 땅에 큰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는 ‘각각 그 힘대로’ 형편에 따라 구제금을 걷어 보낸 바 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러나 일부 성도들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 이를 개선하기는 어렵다. 여러 명이 동시에 임직을 하기 때문에 나 홀로 교회 전통 혹은 방침에 대항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목회자들의 직분자 임직과 헌금에 대한 명확한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바뀌기 힘든 관행인 것이다.

또 교회 목회자의 의지만으로도 개선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백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는 지난해 5월 교회 설교를 통해 “한국이 지니고 있는 권력화 되고 계급화된 장로 권사제도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있기까지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제도 자체가 한국 교회를 타락시키는 가장 큰 병폐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어 “각 교회마다 장로, 권사를 투표할 때가 되면 돈을 쓰면서까지 선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선거가 끝난 뒤에는 크고 작은 후유증으로 교회가 진통을 앓고 있다”며 “투표로 선출된 장로와 권사가 임직을 할 때 교회에 거액을 헌금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 등은 모두 장로와 권사직을 봉사직이 아니라 계급이요, 감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 교회에서는 정말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누구보다도 신실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번듯한 직업이 없으면 장로와 권사가 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당시 이재철 목사는 권력화된 장로, 권사 직분을 개선해야한다며 초교파로 설립된 백주년기념교회에서 호칭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장로·권사 호칭제 시행은 양화진묘원 관리권 문제와 함께 예장통합 교단 내에서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이 목사는 교단을 탈퇴했다.

어느 교회에서든 장로와 권사, 안수집사 등 직분자를 세우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장로님, 권사님을 세워 교회는 모범을 보여주고 한 세대를 이끌어가야 한다. 임직식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마땅히 축제여야 한다.

성경은 교회 직분자를 어떻게 세우라고 할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디모데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라고 권면하면서 “감독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할 줄 알고, 지혜로우며,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남을 잘 대접하며, 잘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감독과 마찬가지로 집사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으며, 술 마시고 흥청대지 아니하고,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공정한 임직은 공정한 교회로 가는 첫걸음. 성경적인 교회를 위해 무엇이 공정한 임직인지, 어떤 전통을 지키고 어떤 전통을 버릴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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