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4] “교회 통일운동 분단 후 이념의 그늘 못 벗어”
상태바
[특별기획4] “교회 통일운동 분단 후 이념의 그늘 못 벗어”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4.14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 미래 교회 보고서’ (4) - 북한선교의 미래와 전망

▲ 남북 교회 대표들은 수차례 해외에서 만나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협의했다.

① 북한 선교와 통일운동의 발자취

북한 선교는 한국 교회가 책임져야할 가장 중요한 선교 영역이다.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하고 해결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북한선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갈려 있다. 최근에 인도적 지원이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통전적인 선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등이 심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향후 10년 혹은 그 이후의 북한 선교에 대한 전망과 대책을 3주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광복 초기 반공논리 주도…80년대, 통일 대화 시작돼
보수권 인도적 지원 관심 보이지만 이념 극복 과제 남겨


한국 교회의 북한선교는 분단 이후 끊임없는 관심사 중 하나다. 북한이 무신론 사상을 배경으로 한 공산주의라는 점에서, 민족복음화의 과업과 함께 통일은 한국 교회의 오랜 숙제가 됐다.

# 한국교회 북한 선교와 통일운동
그러나 북한 특수성 때문에 여타 선교 영역과 달리 이데올로기 진보와 보수 이념 논쟁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60여년 북한선교는 이념적 시각차에 따라 태도도 극명하게 갈렸다.

6.25 전쟁 이후 한국 교회는 장로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멸공통일의 노선을 지지했다. 연세대 노정선 교수(기독교사회윤리학)는 “한국 교회가 이승만 장로를 지지하면서 교회의 통일운동의 대부분은 이승만 노선에 포로가 되거나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정체성을 소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군사쿠테타를 계기로 한국 교회는 그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렸다. 이후 1972년 7.4공동성명을 시작으로 자주, 평화의 원칙에 의한 통일 노력이 시작됐지만, 대부분 한국 교회는 반공적, 분단지향적인 목회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1983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통일위원회를 구성하고 평화와 화해, 호혜적 입장을 지닌 활동을 전개하려 했으나, 정부가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를 ‘용공’, ‘좌파’ 등으로 몰면서 탄압했다. 이후 1986년 남한의 교회협 대표들과 조선기독교도련맹 대표들이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선으로 스위스 글리온에서 통일대화를 처음 시작했다.

이어 1987년부터 교회협 통일위원회는 한국교회의 평화와 통일 선언을 준비, 1988년 2월 29일 분단의 죄책 고백, 인도주의 우선의 원칙, 군사비 축소 등의 내용을 담은 선언을 발표했다. 특히 한반도의 핵무기 철거 주장과 함께 평화체제의 완전한 보장 후 미군 철수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요청과 함께 남과 북의 인권유린에 대한 반대 입장도 밝혔다.

1989년 3월에는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 평양 봉수교회에서 부활절예배에 참석하고 김일성과 만나 남북의 통일 방안을 논의했다. 1992년 1월에도 교회협 권호경 총무와 남한교회 대표들이 조그련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 김일성을 면담했다.

또 1993년 8월 15일에는 시민 6만5천여 명이 참여해 서울 독립문과 임진각을 잇는 남북 인간띠 잇기 대회를 주최, 기독교 통일운도의 상징적인 행사가 됐다. 이어 1995년 분단 50년을 맞아 희년 선언을 발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념적 틀을 제공했다.

# 현존하는 교회 이념 차이 극복 과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10년여 간 한국 교회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북한 선교 지원으로 폭을 넓혔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가 터부시됐던 과거 보수 정권과 달리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이 강조되면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교계의 전향적 태도가 눈에 띄었다.

지난 2005년 남측 예장통합과 북측 조그련이 합의해 평양봉수교회 재건축을 지원, 2008년 7월 16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또 2007년 12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평양에 조용기심장병원 건립을 추진, 올해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 특히 보수적 대북관을 견지해왔던 조용기 목사가 인도적 지원사업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평가를 받았다. 기독교통일학회 주도홍 교수는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진 조용기 목사가 기도의 실천으로써 변화된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남북 교회 대표들은 수차례 해외에서 만나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협의했고, 북한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약속했다. 또 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싼 국제사회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미국 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등과 함께 지속적으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대북지원 분야에서 한국 교회의 활동도 타종교를 압도하고 있다. 전체 대북지원 민간단체 79개 가운데 22개가 기독교 계통의 단체다.

특히 지난 3년간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실적의 약 40.29%가 한국 교회를 통한 것이었다. 한국 교회가 민간의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북한선교와 관련된 교계 학술 단체 수도 급격히 증가해 현재 기독교통일학회, 북한선교연구원, 한반도평화연구원 등 10여개에 이른다. 선교는 물론 정치, 문화, 경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북한 사회의 변동에 따른 대응과 전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선교를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시각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보는 인도적 지원을 통한 신뢰 회복과 평화 정착, 보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 탄압의 개선과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1970년대 민주화 동지로 만났던 두 목회자가 기독교적 통일운동의 방향을 놓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였다.

이재정 신부(국민참여당 대표)는 “북한의 인권 개선과 핵 폐기가 필요하지만 동족의 생존 문제가 최우선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인도적 대북 지원에 있어서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정치적인 고려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상임대표)는 “한국 교회가 북한의 독재와 인권 참상을 외면한다면 이율배반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기독교적인 통일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시각차는 지난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 교계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전향적 태도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도 북한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지만 나에게 북한은 신학적 수수께끼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다”며 “하나님이 북한 사람들의 고통을 너무 오래 방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과 정의를 함께 실천해야 할 한국 교회로서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