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난'이라는 주제는 성경에서, 특히 예수의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핵심적인 개념 중의 하나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광, 승리, 부활 등과 같은 종말론적 약속들은 모두가 고난의 극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곧 고난과 영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엠마오로 향하던 낙심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라고 깨우치셨고, 고난의 길을 만류하던 베드로를 책망하신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라고 아주 분명하게 제자도(弟子道)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증인'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martus'인데 이는 곧 ‘순교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증인이란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들 역시도 복음의 증인들로서 순교를 당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기꺼이 순교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들 앞에 놓여진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장차 예비된 하늘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복음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어떠한 고난의 십자가라도 짊어지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워가겠다는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이번 사순절 기간에 우리의 모습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세상적인 복을 갈망하며 축복받기 위해서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교인들은 많이 볼 수 있어도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순교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는 참 제자들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곧 고난 없는 영광, 죽음 없는 부활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려고만 하는 악한 사람과 같은 것이다. 한국 교회는 축복이나 영광을 바라보기에 앞서 십자가를 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풍요롭고 세상살이에 바쁘고 지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금식하지 않으면 헐벗고 굶주린 자의 고통을 알 수 없고, 따로 기간과 시간을 정하지 않으면 기도할 여유조차 가질 수 없는 환경 속에 처해 있다. 고난에 대한 의미는 갈수록 퇴색되어져 가고, 세상에 대한 갈증은 더해만 가는데 우리의 영성은 고갈되어져 있다. 어쩌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순절은 그 의미조차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 받아야 할 저주를 주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순절만큼은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경건과 영적 훈련의 기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병금(강남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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