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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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승인 2002.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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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 때, 설교 대목마다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는 말을 남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설교 내용에 대한 인위적인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라는 말을 선언하여 연쇄(連鎖)반응적 “아멘”을 유도하는 표현형식은 영성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설교와 기원(祈願)은 신앙행위와 예배요소라는 점에서 동일하나 표현구조에서 설교체와 기원(기도)체가 같을 수 없고 그 언어의 대상에 있어, 설교는 인간이 대상이고, 기원은 하나님이 대상인 점에서 혼용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기도형식의 표현임과 동시에 기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비하여 설교는 성경해석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사람에게 알리는 “예언적”, “구원적 선포”(롬10 : 17)로써 신(神)적인 기적을 함축한 단순한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인간 앞에 먼저 행하시고 인간은 그 말씀 앞에 순종으로 응답하게 하시는 신적역사의 대행적 행위가 설교인 것이다. 그러니 그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그 대상은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설교(강도)를 선포하는 대목마다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라는 말을 설교의 틀 속에 삽입하는 것은 신중한 분석력을 채 갖지 않은 회중들의 예배정신을 훼손시키며 혼란케 할 가능성이 있다.

예배에 있어서 임재적 요소인 말씀선포의 표현형식 속에 응답적 요소인 기원(기도)적인 표현형식을 연결하여 두 요소를 같은 시간 단위 안에 혼합시키는 것은 두 대상을 동시에 설정하는 것이므로 설교원리에도 기도원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설교에서 회중의 반응과 적용효과의 기대를 영적 감흥과 성령님의 역사에 위탁하지 않고 언어의 표현기법을 통한 회중을 매료(魅了)시키며 설교에 몰입을 유인코자 인위적이며 선동적 어조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라는 말을 제안하여 회중들이 반사적으로 “아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그 “아멘”의 반응을 통한 설교자 자신의 성취감을 누리려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회중이 선포되는 말씀 앞에 중생한 지성적 판단이나 성령님의 인도로 신앙정서의 감흥적 반응으로 자원적으로 말씀을 시인하고 공감수용하여 “아멘”으로 긍정하기보다는 회중들의 기복적인 성취덕목을 “축원합니다” 라는 기도적 표현형식에 접속하여 수용할 것을 강조하고 회중이 타율적이고 피동적인 “아멘”이란 반응으로 화답을 하게 하므로 아름답고 신앙고백적인 신령한 언어인 “아멘”이 습관화, 기계화로 점점 굳어지게 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라는 충동적이고 기원적인 표현구조를 취하는 것은 회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흥분시켜 기복신앙심을 부추기는 결과를 나타내게 할 뿐 아니라 설교에 대한 회중들의 기대심리와 성취감정을 고조시켜 설교에 경도(傾倒)되게 하는 이교적이고 종교주술적(宗敎呪術的)인 성향을 은연 중에 띠게 되는 것이니 반드시 시정해야 할 것이다. 설교는 원리적인 의미에서 설교자와 회중의 영성적 교감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충동적 동사작동법(動詞作動法)이라고 하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기원적인 말을 설교 어체에 도입 혼합시키는 것은 신학적으로 변호 받을 수 없는 표현 논리의 부조리인 것이다. 하나님께 수행하는 예배의 논리적 질서는 설교는 순수하고 온전한 말씀선포이어야 하고, 기도(기원)는 순수한 간구이어야 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적용시키는 설교에서 “축원합니다” 라는 하나님이 대상이 될 기원적 표현을 개입시키는 것은 말씀의 본의를 왜곡시켜 설교의 무질서가 초래될 문제점이 있다.

설교자가 회중들의 “아멘”이라는 화답의 반응을 정직한 동기에서 기대한다고 하면 말씀이 가진 권세와 생명력을 통한 은혜 받은 충만한 심령으로 진리를 시인하고 교훈에 승복하여 고백적이며 자원적 반응으로 표현할 때 그 의미는 매우 큰 것이다. 그런고로“축원합니다”라는 말에 반사적 반응인 “아멘”을 유도하는 것은 실제적 영적 가치를 찾을 수가 없으므로 이는 시정되어야 한다. “깨달으시기 바랍니다”라든지 “믿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김석한(기독신학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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