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문화 유산을 찾아서 - 해남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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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화 유산을 찾아서 - 해남읍교회
  • 승인 2002.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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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우리나라의 땅 끝은 위도상 전남 해남군 송지면의 북위 34도 17분 21초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 땅 끝 마을이 있는 해남에 복음을 먼저 전한 분은 1895년 4월4일 부산에 도착한 유진벨(Eugene Bell 배유지)선교사로 1898년 3월에 목포의 최초의 교회인 양동교회를 비롯하여 전남 .광주 지방에 약 50여개의 교회를 세운 분이다.

그리고 오늘 찾아 보려는 해남읍교회는 1910년에 공식 설립된 교회로 배유지 목사보다 1년 늦은 1896년에 한국에 오신 헤리슨(W.B.Harrison 하위렴)선교사에 의하여 설립된 교회이다. 그런데 해남읍교회가 교회역사에서는 1910년에 설립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나 사실은 이미 1905년 9월9일에 해남의 고도리에 사는 방기남의 집에서 김내섭과 박명숙에 의하여 교회공동체가 시작되었다.

타 지역에서 이주하여 온 교인들에 의하여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커지자 남외리에 사는 임봉록과 이복덕 부부가 자신의 초가 8칸 그리고 대지 150평,밭 12락 결혼 금반지등 전 재산을 헌납하여 현재의 해남읍교회의 기초를 만들게 된 것이다.
임봉록은 해남군청에서 광주도청으로 세금을 나르던 일을 하였는데 나주를 지나다가 논에서 김을 매던 아낙네들의 찬송가 소리를 듣고 은혜를 받아 스스로 광주에 있는 양림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는 그는 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와 담배를 끊고 매일 아침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신앙훈련을 쌓았다.그리고 자신이 일한 댓가에서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고 밤이면 촛불을 켜고 성경을 읽을 정도로 신앙에 심취를 하였다.
그리고 해남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대접을 잘 하여 주자 특히 생활이 어려운 무당들도 해남읍교회에 많이 출석을 하여 사람들은 교회를 당골집회소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임봉록의 집에 어느날 나무상자가 배달되었는데 그속에 쪽 복음이 수천권이 들어 있어 주인이 오랜 동안 찾아가지 않자 그 아들과 함께 몇 달에 걸쳐 그 쪽 복음을 각 지방에 돌며 팔기도 하고 배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1905년 자생적으로 생긴 해남읍교회가 1910년에 교회로서의 조직을 갖추기 까지는 해외선교사들이 정기적으로 순회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지도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 이때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한 선교사로 섬 선교에 공이 많은 맹현리선교사도 해남읍교회를 지도한 분이다. 이때는 한국사람으로 전문적인 신학공부를 한 분이 없어 선교사를 돕던 사람을 권서나 조사라는 명칭으로 교회를 도왔고 호남지방에서는 1907년에 비로서 윤식명이 처음 목사로 임명이 되었다.
오늘 방문한 해남읍교회의 정찬훤목사에 의하면 현재의 교회터에 새로운 성전을 곧 짓고 현재의 교회는 선교기념역사관으로 꾸며 해외선교사들과 선조들의 신앙역사를 자료로 남기고자 준비중이라고 하셨다.

찾아가기:전남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46-2 전화 061-536-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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