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없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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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없는 시대
  • 승인 2002.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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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도 한 달이 지났다. 새 천년을 시작하던 흥분은 간데 없고 새해를 시작하는 의례적인 인사마저도 쑥스럽게 느껴진다. 정계는 트집잡기와 오기 세우기로 귀중한 시간을 탕진하고 자기 걸음을 재촉하기보다는 남의 발목을 잡는데 여념이 없다. 정치가 민족의 이익과 공공자산을 지키려는 의지보다는 퇴폐한 편당 싸움에 파묻혀 버리니까 IMF사태의 사회적 충격은 예상 밖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사회적 신뢰 관계가 깨지고 사람들은 한탕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알콜 소비율이 세계에서 으뜸이고 이혼율은 1/3을 훨씬 넘어선다고 한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집안에서 아동학대가 심해지고 가정의 파탄이 늘어나며 마침내는 자녀들의 양육의무를 저버리는 일이 폭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초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동안에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 정세 또한 만만치 않다. 미국은 9.11사태 이래 전쟁은 시작했으나 그것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전쟁 행위의 정당화를 위해서는 국경 없는 전쟁을 해야 하는데 국제 여론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알카에다 포로들의 처우에 관한 인권문제는 미국이 내걸어 온 국가이념을 도전하고 있다. 결국은, 미국의 국가 이익이 국가 이념을 우선한다는 자세다. 이것은 19세기적 국가주의의 재판이고 그것을 지지해 줄 것을 다른 나라들에 강요하는 것은 패권주의와 진배없다. 미국의 대 태러 작전은 UN을 포함한 국제적 합의과정을 밟지 않았는데도 많은 나라들이 그 전쟁행위의 경비를 부담하게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조치의 일환으로 우리는 더 많은 재래식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사들여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은 이 기회를 이용해 국제사회에서 군사적 발언권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르기는 해도 한반도 주변의 정세는 19세기 말의 구도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의 행보에서 빠져 나오기는 힘들 것이고 또 그러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런 딜레마에 우리의 남북관계가 놓이게 되었다.
이러는 판에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은 작년에 일본에 가서 우리나라 국내 정치의 부끄러운 것을 폭로하고 가차없는 공격을 가했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차기 대통령 후보를 자임하는 사람이 미국에 가서 거의 같은 행동을 했다. 적어도 그 두 사람은 우리 민족의 의지를 피력하고 그것을 펴나가는데 필요한 국제질서에 대한 구상이라도 전달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의 패거리 싸움에 짜증이 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의 행태를 뛰어넘어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언덕이 없다는 것이다. 난세를 살아온 어른들의 지혜가 존중되고 무모한 것 같지만 순수한 젊은이들의 기상과 꿈을 키워 가는 영감이 없다.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하리라 했다. 영감은 비전을 창출하는 충동이요 근거다. 사람의 마음을 충동해서 용기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이 감정의 파장에 휘말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 영혼의 깊은 곳에서 샘솟는 에너지 같은 그런 것이 영감이 아닐까. 이 보배를 어떻게 장마당에서 구하려 했던가. 20세기를 살면서 우리는 힘이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권력은 아무리 포장을 해도 영감을 창출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거래에서 영감을 찾을 것인가. 우리가 다 시장논리의 한 부분이지만 그러나 아직은 그것에 사로잡힌 포로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 적극적인 탐색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 교회는 역사는 짧지만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권력과 짝하고 시장의 생리에 한 발을 걸었던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한다. 이미 수많은 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열악한 생명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게 작은 실천들을 드러내 보이면 참신한 영감의 근거가 될 것이다. 작은 이야기들을 모으면 희망의 기초가 되리라.
우리는 더 낮은 곳을 향해서 걷겠다고 다짐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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