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애양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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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원교회
  • 승인 2002.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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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애양원은 한국 교회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손양원 목사의 신앙과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애양원은 원래 전남 광주에서 1904년 12월에 오웬 선교사가 나환자 몇 명을 치료하기 위하여 세워진 기관으로 1928년에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로 6백여 명의 나환자들이 옮겨 왔다.

손양원 목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7월에 애양원의 2대 목사로 부임하여, 1950년 9월28일 공산당에게 순교 당할 때까지 이곳에서 목회했다. 1948년 경에는 애양원에 1천여 명의 나환자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나환자의 환부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제거할 정도로 손양원 목사는 예수의 마음을 품은 분이며, 그 사랑을 실천하신 위대한 신앙 선배이다. 애양원교회의 앞뜰에는 순교비가 세워져 있는데 ‘기도로 호흡을 삼고 성경으로 양식을 삼고, 복음전도로 생활을 삼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고, 원수에게도 사랑의 사도로, 고난을 받는 개인과 민족에게는 소망을 주는 삶을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애양원교회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바닷가 양지 바른 곳에 세 개의 묘지를 볼 수가 있다. 위의 것은 손양원 목사와 1977년 소천한 사모가 합장되어 있는 것이고 아래의 두개는 6.25 전쟁시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한 두 아들인 동신, 동인의 묘지(사진)이다.
손양원 목사의 위대한 신앙은 1948년에 공산당에게 두 아들을 잃고서도 그 원수를 사형직전 구해내서 양자를 삼은 것으로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주고 있다. 또한 묘지 부근에는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이 있어 연간 3만여 명이 찾고 있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1989년 안용준 목사가 소장하고 있던 손양원 목사의 1백50점의 유물로 시작했는데, 1994년에 한국 교회가 연합하여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는 손양원 목사의 귀중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특히 사진 한 점이 눈에 띄는데, 국기에 대한 경례를 옛날에는 머리를 숙여 절하던 것을 손양원 목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것은 십계명의 1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설득하여 가슴에 손을 얻는 것으로 바꾼 일화가 담긴 사진이다.

이와 같은 위대한 손양원 목사의 신앙은 190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서 부친인 손종일 장로의 믿음을 본받았으며, 또한 일본에 유학 가서 만난 일본성결교회의 나카다 목사의 영향과 경남성경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주기철 목사의 영향도 컸다고 보겠다. 당시에 손양원 목사는 1940년에 신사참배 반대를 하다가 광주형무소에 투옥되었으며 해방이 되면서 출옥을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두 아들이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고 본인도 애양원을 지키다가 공산당에 순교를 당하는 등 손양원 목사의 집안에 닥친 온갖 어려움을 지금 돌아보면 점점 어두워 가는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할 필요를 우리에게 보이기 위한 주님의 각별한 섭리임을 알수가 있다. 3찾아가기: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061-682-7906) / 애양원교회 담임 이광일 목사

박은배(벽제고 교감, 기독교유적답사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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