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화유산을 찾아서…외국인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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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유산을 찾아서…외국인 묘지
  • 승인 2002.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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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를 건너서 합정동 로타리에 오면 외국인 묘지의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외국인 묘지가 나오고 5백여 기 가까운 묘와 비석들이 공원 안에 가득 차 있다. 묘지 구석구석을 다녀보면 비석에 총탄 자국이 있어 6.25 전쟁시에 상당히 피해를 본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도심 한가운데 외국인 묘지가 조성된 것은 개신교 초기 선교사인 헤론(J. W. Heron)이 1890년 7월에 한국에서 별세하였을 때 고종이 땅을 기증하여 묘지로 사용하게 한 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숨진 선교사들이 이 곳에 묻혔다. 이곳에는 12개 국의 4백10명의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데, 언더우드 선교사와 가족들, 아펜젤라, 베델, 스크랜튼, 게일, 헐버트 등의 이름을 비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분들은 한국에 와서 ‘예수를 알고 예수를 알게 하자!’라는 복음전파의 단순한 공식을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바치신 분들이다.

이곳에 묻힌 몇 분들의 비문을 읽어 보면 이준 열사와 함께 헤이그 세계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던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인 헐버트의 묘비에 쓰여 있는 글이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바로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배어 있다. 또 1891년 한국에 온 캐나다 의료 선교사인 홀(W. J. Hall)은 아들과 아내를 남기고 3년 만에 병사했으며 그 아들인 셔우드 홀은 1932년 한국 최초의 결핵 퇴치 크리스마스 씰을 제작·판매한 분이다. 그는 말년에 벤쿠버에서 숨졌지만 ‘나의 사랑 한국에 나를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또한 1885년 4월15일 부활절 날 복음을 들고 처음 제물포에 온 언더우드·아펜젤라 부부도 이곳에 묻혀 있다.

그리고 1886년 24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에니 엘러스(A. J. Ellers) 선교사는 여성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정신여중·고를 설립했는데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을 믿자! 바르게 살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펜젤라 선교사의 장녀의 묘비에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외국인 교회가 세워져 있어 주한 외교사절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선교100주년기념탑도 세워져 한국 교회의 역사 유적의 심장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기념비에 새겨진 정연희 시인의 양화진이라는 시의 일부를 일고 묵상하여 보았다.
양화진
영혼의 고향 하늘나라 가는 길목
백 년 전에 이 땅을 예수께서 지적하신
땅 끝을 믿고
아비의 집을 떠난 젊은이들이
그 생애를 기꺼이 바치고
주 안에서 잠든 곳(이하 생략)
찾아가기: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합정 로터리에서 안내판을 따라 가면 된다.

박은배<벽제고 교감, 기독교유적답사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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