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와 제비뽑기 그리고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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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서와 제비뽑기 그리고 자유의지
  • 승인 2002.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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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서라는 말이 있다. 가뭄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농민은 국민의 10%도 안되나 가뭄을 대하는 국민들의 정서는 국민의 100%가 농민인 것 같다.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기여입학은 시기상조라고 재차 못박은 것도 국민 정서를 이유로 꼽았다.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이 국민 정서의 눈총을 받고, 목사는 중형 승용차만 굴려도 교인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부정 시비를 일소하기 위하여 제비뽑기로 선거를 대체하자는 안에 상당한 정서가 형성되어 지난 해 예장합동 86회 총회에서는 논란 끝에 법제화가 성공했다. 예장통합 등 여타 교단에서는 부결됐지만 예장합동의 제비뽑기 도입은 한국 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교계신문을 통해 ‘법으로 본 제비뽑기의 위헌성’을 피력한 바 있고 공청회에 제비뽑기제도의 반대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다수 집단의 논리요 온 교회의 정서라고 항상 절대 진리는 아니다. 세월의 검증을 거치고 나서는 오류로 판명되기도 한다(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제31장 3항). 필자가 부정을 옹호하거나 돈 선거에서 떡고물이나 얻어먹으려고 제비뽑기를 반대하겠는가? 제비뽑기를 강조하면서 부정을 막을 고민이나 방도를 연구하지 않고 손쉽게 유권자의 권리를 없애버리는 것은 빈대를 잡으려는 방법은 생각하지 않고 초가삼간만 태워버리는 격이다.
제비뽑기가 선거의 대안으로 제시된 만큼 이 또한 집단 논리요, 교회의 대다수 정서라 할지라도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묵살하고, 유권자의 권한을 무력화시킨 오류로서 이를 통해 선거의 부정은 막았다 해도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없애놓고 죄 없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빠진 제비뽑기로는 인간인 이상 행복하지 않을 것이며 제비뽑기제도 하에 내가 유권자라면 나는 기권을 선택하여 인간으로 남겠다. 이 분들이 기권방지법도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이길원(경인교회 담임, 교회법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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