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그리고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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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그리고 2002년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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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마지막 주일에 서서 한국 교회의 이 해를 결산해 본다. 우리는 하나님께 ꡒ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ꡓ(마 25:20)라고 할 수 있을까? 교회 성장의 둔화 내지 하향세가 반전된다는 이야기는 올해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성장 대신에 성숙을, 넓이의 차원 대신에 깊이의 차원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론이 오래 전부터 제시되고 있으나 70년대와 80년대 고속 성장에 대한 미련이 진하게 남아 교회의 목표가 바로 그것인 것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작년과 같이 대형 문제들은 없었으나 얼마 전에 들려온 기독교 위성방송 채널 사업 선정 취소 소식을 비롯하여 교회의 위상을 끌어내리는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선수촌의 종교관이 처음에는 변두리에 배정되었는데 개신교에서 ꡒ종교는 사람의 삶과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렇게 외진 곳에 종교관을 두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ꡓ는 논리를 내세워 개신교관만 선수촌 중앙부분으로 재배정 받은 일이 있었다.
지금 그런 주장을 하면 듣는 이들이 수긍할까 생각해 본다. 교회는 사람들이 삶과 사회에서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단군상 문제, 생명복제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는지도 살피게 된다. 구심점도, 여호수아와 같이 앞장 선 그룹도 없이 보내온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한국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ꡒ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ꡓ(눅 13:8)라고 기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너무 부정적인 측면만 이야기 한 것 같다. 곳곳에서 들리는 상한 영의 탄식소리를 가슴 아파하며 작은 등대로서 불빛을 밝히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타문화권 선교사들의 숫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선교문화도 향상되고 있다.
새 시대에 걸맞는 젊은 지도자들이 교계 전면에 부상되고 있음도 보고 연합운동의 새로운 기운도 감지된다. 필자는 설교 자료 주제별 파일들 가운데 ꡒ교회의 사회봉사ꡓ라는 파일을 마련해 두고 일간지에 실리는 교회의 긍정적인 소식들을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있는데 올해도 그 파일이 두툼해졌다. 주님께서는 2001년, 말없이, 성실하게 목양과 선교와 봉사를 위해 애쓴 것의 열매를 허락하실 것이다.

2002년이 열리고 있다. 재작년에는 밀레니엄이라고, 올해는 21세기의 첫 해라고, 계속해서 흥분된 가운데서 맞이했는데 2002년은 차분하게 맞이하게 되어 좋다. 교회의 생명은 경건과 영성에 있다. 교회생활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주5일 근무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수적인 방안들도 필요하지만 경건과 영성 강화를 통해 정면돌파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경건과 영성에 충실할 때 영적인 권위가 회복된다. 교회는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여 사람들과 사회 각 분야의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위상을 높여야 한다.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는 교회가 되어 나라가 새로워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내년의 대선이 이 일에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ꡒ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ꡓ(삼상 11:14)가 2002년 한국 교회의 구호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침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통일운동의 불씨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통일 문제를 둘러싼 재작년의 기대와 올해의 답보는 ꡐ통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ꡑ이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 주었다. ꡒ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ꡓ(겔 37:17), ꡐ네 손ꡑ은 교회를 말한다. 월드컵을 선교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번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개최되어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될 터인데 한국에서는 무엇인가 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대규모의 중국인 관람단이 한국을 찾게 된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희랍어 단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가 ꡐ크로노스ꡑ와 ꡐ카이로스' 둘이 있는데 전자는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고 후자는 무엇인가 의미 있고 가능성이 있는 시간을 말한다. 우리는 2002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맞이하여야 하고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주님께서 새로 허락하시는 2002년의 포도원에서 탐스러운 포도를 많이 수확하여 내년 이 때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주의 제단에 바치며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는 기원을 같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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