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 이해의 깊이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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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 이해의 깊이를 바꿔야 한다
  • 승인 2001.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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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지 동기와 목적에 따라 그 일의 우선 순위가 결정되고 방법도 결정된다. 1970년대 종반기부터 재개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다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깊은 관심과 열기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첫째, 선교는 교회의 지상과제이기 때문에 둘째, 오랫동안 닫혀 있던 선교의 문이 비공식적으로나마 열렸기 때문에, 셋째, 신앙을 용인하지 않거나 제약을 가하고 있는 사회주의권 선교이기 때문에, 넷째, 인접국가이며 역사적으로 밀접한 많은 관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섯째,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여섯째, 북한선교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등등이다.

위에서 말한 이유들 가운데 몇 가지는 북방관계의 정황이 변함에 따라 빛이 바래지고 있다. 우선 ‘중국선교’라는 말이 주던 흥분과 호소력이 약해지고 있다. 전에는 중국선교가 북한 선교의 통로가 되고 또 북한선교의 대행 역할도 하였지만 이제는 북한과의 접촉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중국선교의 동기와 목적을 수정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중국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 변모되고 있어서 중국이 복음의 영향권 아래 들어오는 일은 곧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선교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중국은 대단한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중국이 가지고 있던 폭발적인 잠재력은 빠른 속도로 수면위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13억이라는 인구는 식량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는 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구는 국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경제적으로도 서서히 머리를 들더니 이제는 세계에서 2,3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으로 부각되었다.

어떤 조직의 책임자에게 전도를 하면 그 조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주 쉬워진다. 군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국에 전도를 하는 것은 곧 세계복음화를 촉진하는 일이 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세계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고 숫자도 많다는 사실도 이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복음화 되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선교국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세기에 서구국가들이 기독교의 선교에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였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로마로 가는 길을 재촉하게 만든 이유였다. 바울은 로마를 발판으로 하고 당시 땅 끝이라고 알려진 서바나(스페인)에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우리는 마찬가지의 심정으로 중국선교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맞는 선교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중국의 종교정책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이젠 중국은 삼자(三自)를 종교의 기본 정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삼자의 형성과정과 성격, 적용실태도 알아야 한다. 껍질에 머물 것이 아니라 알맹이도 알아야 한다.

최근에 중국의 종교관계 공직자들이 종종 한국에 다녀간다. 우리 나라의 경우로 말하면 이들은 문화관광부 종무실이나 지방자치단체의 문화공보담당 간부 직원들이다. 중국의 경우 이들은 중국공산당의 통일전선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을 교계지도자들로 알고 그렇게 대접하고 교계지도자들에게 할 질문을 하는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중국의 종교현황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빚어지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선교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가장 기초적인 것 한 마디를 하고 끝맺어야겠다. 필자는 “사진 보내주기가 중국선교의 첫 걸음”이라고 자주 말한다. 중국에 가서 현지 주민들과 사진을 찍으면 꼭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약속을 잊어버린다. 잊지말고 사진을 보내는 것은 기독교인의 성실성을 인식시켜주고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 된다.

지난 주간에는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이 들어 있었다. 춘절을 타향인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중국 근로자들에 대해 따듯한 마음을 갖자. 음식점에서 서빙하는 종업원이 조선족이거든 따듯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잊지 말고 팁이라도 넉넉히 주자. 이것이 중국선교라는 천리길의 한 걸음이 된다.

유관지목사(목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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