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선동화] 눈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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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선동화] 눈꽃사랑
  • 이현주
  • 승인 2007.12.21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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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눈길 해치고 은혜를 갚은 사람들

 


중국 땅 내몽고 지역에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에 생활필수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금년 겨울엔 어떻게 된 일인지 눈이 내리질 않네요.”

“모두 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기상이변이 생긴 탓이지 뭐....”

“그런데 어머니, 앞으로 며칠 후면 새해가 될 텐데 큰 눈이 오기 전에 물건을 더 사다 준비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 주에는 서둘러 도매점에 가서 미리 필요한 물건들을 넉넉하게 사다가 쌓아둬야 내년 봄눈이 녹을 때까지 팔 수 있을게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와 단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 온 아들은 요즘 들어 장사가 잘 되자 싱글벙글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도매점이 있는 도시까지는 자동차로 꼬박 하루길인 300km나 되는 먼 거리에 있을 뿐 아니라 끝없는 초원이기 때문에 만약에 집을 나섰다가 눈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오도 가도 못한 채 생명의 위협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나서지를 못하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우리 혼자 떠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혹시 연탄공장 화물차는 계속 탄을 실어 오기 위해 다닐지 모르니 언제 탄광으로 가는지 알아봐서 같이 떠나도록 하자.”

그동안 아직 큰 눈이 내리지 않아 화물차는 계속 운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번 주가 지나면 곧 많은 눈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에 내일 아침엔 마지막 화물차가 떠난대요.”

“그럼, 우리도 그 차를 따라 내일 도매점에 다녀오도록 하자.”


이튿날 아침 어머니와 아들은 연말과 다가오는 설 대목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오기 위해 소형 화물차를 몰고 인근에 있는 연탄 공장의 대형 화물차를 따라 집을 나섰습니다.

한 겨울엔 온도계의 눈금이 모자랄 정도로 내려가는 이곳의 추위는 말 그대로 살인 추위입니다.


“저 혼자 다녀와도 되는데 어머니까지 함께 나와 고생하게 되었네요.”

“얘야, 그런 말 말아라. 너는 자동차 운전이나 안전하게 잘 하면 된다. 어떤 물건을 해 와야 재고나지 않고 잘 팔릴지는 직접 내가 눈으로 보고 골라야지 안심이 된단다.”


아들 하나 키우며 오랜 세월 가게를 운영해 온 어머니께서는 어떤 물건이 잘 팔릴지 예감으로 알아차릴 정도였습니다.


이른 아침 집을 떠난 자동차는 오후 3시쯤 되어서야 도매점이 있는 도시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겨울은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둑어둑 해집니다.


“급히 서둘러야겠구나. 아까 무연탄을 싣고 가는 화물차는 몇 시에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냐?”

“늦어도 5시 안에는 출발해야 된다고 하면서 우리 보고 일이 끝나면 자기들 있는 데로 오라고 했어요.”


어머니와 아들은 서둘러서 부지런히 물건을 골라 조그만 화물차에 가득 싣고 나니 이미 밖은 어둑어둑 해졌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하룻밤 이곳 여관에서 보내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면 안 될까요?”

아들은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몹시 피곤했던지 길게 하품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야, 바람이 매서워지는 걸 보니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데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아들에게 빨리 돌아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얘야, 어서 화물차가 있는 탄광으로 가자. 기다렸다가 그 차 뒤를 따라 가야한다.”


아들은 조그만 화물차에 가득 짐을 실은 채 어머니와 함께 돌아갈 연탄공장 화물차가 있는 탄광으로 움직였습니다.


“아저씨, 언제 출발해요?”

“저녁밥 한 술 먹고 바로 출발할거니까 차안에서 조금만 기다려.”

커다란 화물차에 무연탄을 가득 실어놓고 저녁을 먹고 있던 운전기사가 아들에게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어둠 속을 뚫고 하얀 나비들이 땅 위로 내려와 앉았습니다.


“얘야, 큰 일 났다. 기어이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하는구나.”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들이 급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니 온통 하늘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눈발이 하나 둘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다시 한 번 자동차에 실어놓은 물건들을 단단히 끈으로 묶은 다음 서둘러 무연탄을 실은 화물차의 뒤를 따라 출발을 했습니다.


초원으로 들어서니 도로에는 어느 새 하얀 눈이 깔리기 시작했고 찬바람은 쌩쌩 소리를 내며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던 아들이 갑자기 차를 멈추었습니다.

앞서가던 화물차가 급히 서더니 운전기사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어떤 자동차가 눈에 미끄러져 구덩이에 빠졌어.”

“그럼 꺼내주고 가야지요.”


어머니가 화물차 운전기세에게 말하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냥 모른 체 하고 가던 길이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하죠?”

“우리라도 남아서 도와줘야지.”

“화물차도 그냥 가버리잖아요. 우리는 바짝 그 뒤를 따라가야 해요.”

아들도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치자고 했지만 위기에 처한 구덩이속의 차 주인이 앞을 가로막으며 도와달라고 애절하게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 어서 차를 세워라. 우리까지 양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운 아들과 어머니는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우선 보온병에 있는 따뜻한 차를 마시우고 몸을 녹이도록 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큰 일 날 뻔 했군요.”

“네, 갑자기 눈보라가 앞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부는 바람에 도로에서 바퀴가 벗어나게 된 겁니다.”

“제 차로 끌어볼테니 쇠줄로 단단히 연결해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구덩이에서 빠져나와보세요.”


한참동안 끙끙거린 끝에 마침내 구덩이에 빠진 차는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젠 됐어요. 앞으로 두 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초원을 빠져나갈 수 있을테니 지체하지 말고 어서 가세요. 초원이 끝나가는 지점에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가 한군데 있으니 먼저 그곳으로 가서 쉬었다가세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런지요.”

“무슨 말씀이세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지요.”


어머니와 아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초원의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앞서가던 무연탄 화물차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새 눈은 완전히 도로 위를 덮어버려서 어디가 길인지 알아보기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아들과 어머니가 탄 작은 화물자동차가 멈추더니 바퀴하나가 길 옆 구덩이에 빠진 채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어 차에 실었던 물건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뒤 둥글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그러니까 아까 화물차를 뒤따라가야 하는 건데 남 구해주다 우리가 죽게 되었잖아요?”


아들은 울상이 된 채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이렇게 깊은 밤에 눈까지 내리는데 이 초원을 지나가는 차량은 끊긴지 오래였습니다.

눈발은 계속 날렸고 초원의 한겨울밤 추위는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 우린 어떻게 되는 거죠?”

두 발과 손이 꽁꽁 얼어붙어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아들은 공포에 질려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자 네 발을 이리 내밀어라.”

어머니는 아들의 두 발을 가슴 속에 넣은 채 체온으로 녹이려고 했지만 어머니조차 이젠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이대로 죽게 되는 거죠?”

이때였습니다. 반대편 방향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아들아, 어서 차에서 내려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이대로 얼어 죽게 돼.”

그러나 아들은 이미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달려오던 차가 멈추더니 그 속에서 손전등을 켠 사람이 내렸습니다.


“아주머니 우리가 왔습니다. 어서 우리 차로 옮기세요. 그리고 따뜻한 차를 마신 후 정신을 차리세요.”

이들은 다름 아닌 몇 시간 전에 구덩이에 차바퀴가 빠져 도와주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알고?”

“네, 저희들이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고 먼저 초원을 빠져나와 휴게소에 도착해 식사를 한 다음 아주머니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야 은혜를 입은 사람의 도리 일 것 같아서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주머니의 차가 나타나지 않아 분명 사고가 났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그만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찾아 주지 않았다면 우리 아들과 저는 초원에서 얼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 먼저 저희들을 살려 주셨지 않습니까?”


초원의 밤, 이들이 나누는 눈꽃사랑과 함께 눈발도 서서히 그쳐가고 있었고 하늘위에서는 쟁반같이 둥근 달이 구름을 헤치고 환하게 비취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필자약력>

김 철 수

서울기독대학교 졸업

월간문학 동화당선으로 데뷔(1984)

한국문인협회 감사 및 국제펜클럽이사 역임

한국아동문학회부회장 역임 현재 지도위원

국제 아동문학작가협회 회장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독서치료사 과정 전담강사

美솔로몬대학교예술대학장

美남가주국제대학교 총장

■창작동화집<우산장수할아버지>등 2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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