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성도, 이웃과 단절 불편하지 않다고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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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도, 이웃과 단절 불편하지 않다고 '인식'
  • 송영락
  • 승인 2007.03.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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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차별주의에 멍든 평신도들 교회 떠나

개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단절의 시대’라고 부른다. 단절은 사회현상만을 지배하지 않고 유기적공동체를 강조하는 교회에 깊숙히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로 덜하지는 않다.

 

현재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단절, 이웃과 단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비주류, 아웃사이더, 심지어 스스로 날라리라 부르는 성도들은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니고는 단절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교회 안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혈연, 지연, 학연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극단적인 단절의 피해자로 남아있다. 일부 교회들은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교인들의 취미와 직업에 따라 끼리끼리 문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극단적인 단절문화를 파생시키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전문대 이상의 성도들에게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00훈련’에 이르기까지 교회성장이란 목적아래 단절문화가 성행되고 있다.

 

사실 현대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 소비자 중심주의와 IT문화는 공동체라는 구속과 부담을 매우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런 사회적환경도 성도간의 단절을 합리화 시키고 있지만 그보다 앞서 비성경적인 사고방식이 더 문제이다.


우리 가족만 잘되면 되지


최근 이웃과 단절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않는 성도가 늘고 있다. 교회의 역사가 깊을수록, 대가족이 한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 이웃과의 단절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교회에서 장로, 권사, 집사로 다양한 직분을 맡고 있지만 교회에서 새로운 가족을 사귀는 것을 어려운 과제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나 친척들이 많기 때문에 새신자가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끼어드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연, 혈연, 학연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강한 성도들은 아쉽게도 교회에서 가족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전근대적 신앙태도는 안수집사나 장로 피택선거를 놓고 온 가족이 선거운동에 동참하는 경우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런 가족주의는 민족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가족주의는 교회공동체와 어울리면서 ‘교회내 가족공동체’라는 독특한 기독교문화를 만들어 냈다.

 

사실 1970, 80년대 급속한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가 가장 강조한 것은 가족의 구원과 가족의 축복이었다. 목회자가 가족의 구원을 강조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교회공동체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다. 이런 편향된 신앙은 우리가족만 잘 만족하면 된다는 ‘교회내 가족공동체’를 파생시켰다.

 

이런 ‘교회내 가족공동체’는 지역주의와 연결되면서 교회공동체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교회 제직들을 선출할 때의 지역적 차별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담임목사나 교인구성원들이 영남권이나 이북출신이 많은 교회에서는 호남권 출신의 교인은 장로 선출에서 공공연히 배제되고 있다. 반대로 호남권 중심의 교회에서는 영남권 출신 교인이 장로가 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한국교회 성도들의 현실이다.


교회내 차별주의 심각


또 하나는 교회내 차별주의다. 목회자나 장로, 권사들의 일반 성도 평신도에 대한 차별,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차별, 청소년과 어린이들에 대한 차별, 신체장애인에 대한 차별, 돈 있는 교인들의 돈 없는 교인들에 대한 차별, 신분 높은 사람이 신분 낮은 사람에 대한 차별, 고학력 출신들의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 소위 신앙이 좋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초신자와 교회생활을 열심히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등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이런 차별주의는 청년과 청소년들 시기에 잘못된 신앙관을 심어주었다. 어려운 20대를 보냈다고 말한 김길준형제(31세)는 부모님의 비교의식이 가장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장로인 부모가 끊임없이 교회친구들과 비교했으며 그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했다. 성도간의 단절은 이런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런 현실을 A.W. 토저는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의 저서를 통해 “오늘날 도덕적 풍토는 우리 주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엄하고 질긴 신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종교적 온실들에서 만들어지는 허약하고 깨지기 쉬운 성도들은 과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간증하다가 죽어간 신자들에 비교하면 한심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들은 유약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하다. 거의 알지 못하며, 유명한 기독교 고전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을 힘 빠진 손으로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비교의식 찌든 청년들이 떠났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출세한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휴면상태에 빠져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휴면을 선택한 이유로 ‘돈을 벌면 교회를 다니겠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하면 교회를 다니겠다’고 응답했다. 결국 이런 차별주의와 가족주의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 사회적으로 실패한 성도, 신앙이 낮은 성도들을 교회 밖으로 내쫓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사회에서나 가장 왕성한 활동을 감당하고 있는 30~40대가 교회에서 사라졌다. 주일 하루 사역을 끝내고 교회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오른 40대 초반의 K집사는 비로소 ‘휴~’하는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유는 교회 내에 있는 40대 연령의 남자 집사로서 교회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K집사의 주일 스케줄은 빡빡하게 짜여 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1부 예배를 졸린 눈을 비비며 바삐 참석하고, 9시부터 시작되는 중등부예배를 학생들과 함께 드렸고, 곧이어 9시 5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진행된 분반공부를 인도하고, 10분 40분부터 시작되는 성가대 연습 참석 후 11시 예배에 성가대 봉사, 점심식사를 할 때까지 모든 프로그램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점심식사 후에는 오후 남전도회 정기 월례회가 오후 1시부터 진행되어 서기의 직임으로 거기에 참석하고, 오후 3시 찬양예배 OHP 담당자로서 2시 40분부터 본당에서 대기한 후 찬양예배 시간에는 온 몸에 피로가 엄습하면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연신 끄덕 끄덕 머리 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교회 현실상 K집사와 같은 이들을 양상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 내몰리는 평신도들 가운데는 아예 교회를 떠나버리는 이들도 생기는 경우를 종종 경험할 수 있다.

 

문제는 머리는 커져 있는데,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교회 내에서 수줍음이 많거나 지적, 혹은 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영적공동체를 위해 모든 구성원은 함께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향해 관심을 열어 놓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부흥은 공동체를 회복시킨다


하지만 부흥이 일어나는 모든 기간마다 교회공동체는 감사와 찬양, 주님의 영광, 특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을 찬미하는 것으로 가득 찼다. 십자가의 영광, 보혈의 놀라움, 이러한 것들이 교회의 주체가 됐다.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그의 위대한 속성들이 노출됐다. 그룹과 혈연, 지연, 학연, 사회적 지위의 벽에 감금된 성도들은 마음의 담을 헐고 진정한 공동체를 체험했다.

장성배교수(감신대)는 부흥운동은 한 마디로 성령운동이었다고 진단했다. 장교수는 우리가 성령을 체험할 때 하나님과 분열되었던 삶이 회복되고 이웃들과 피조물들과도 참된 화해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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