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어려움, 종족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으로 사회적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많은 일정 가운데 타밀족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흠모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타문화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문화를 잘 수용하면서 억압된 감정을 종교를 통하여 해소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타밀족계의 신학교는 매우 잘 운영되고 있는데 대부분 깊은 산골이나 농촌지역의 지도자들이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신학교는 2개 정도가 되며, 나머지는 매우 작은 숫자만이 학교에서 공부할 따름이다. 스리랑카내의 교회의 예배형태를 보면 영어로 설교하면, 타밀어와 싱할리어 통역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내에 타밀족과 싱할리족이 함께 예배하기 때문이다. 찬양도 역시 2개의 언어로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 그리스도인들은 이야기한다. 나는 싱할리도 타밀도 아닌 기독인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선교의 비전을 말할 때 기독교인이라는 곳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선교 현장에서 전면전으로 그들과 맞서는 것이나 접촉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지인과 일대일 접촉과 보건 의료 및 구제 사역등을 통하여 접근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 올 수 있다. 이같은 사역은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악하거나 남에게 해를 주려하지 않는 순수함도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사랑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따뜻하게 대한 다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스리랑카를 생각할 때 우리는 힌두교나 불교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학교 혹은 카톨릭 교회가 세운 학교들이 이슬람교도들의 손으로 하나씩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스리랑카를 향한 선교는 종교전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스리랑카의 선교를 위해 시급한 것은 선교사가 타종교와의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적전쟁에서의 승리는 곧 선교의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독교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여 기업을 통한 선교사역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일을 제공하면서 그들을 전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현지 사역자들과의 협력하는 것이다. 한국인 선교사 혹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모두가 각자 주어진 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협력한다면 보다 좋은 결실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리랑카에 대한 정보와 기도의 동역자가 더 필요하고, 신학교 사역을 위하여 후원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도자를 양육하면 그들이 또 다른 지도자를 양육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스리랑카는 먼 나라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가 품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다.
저작권자 © 아이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