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대학교 스리랑카 단기선교팀 - “NOW”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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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대학교 스리랑카 단기선교팀 - “NOW”체험기
  • 승인 2001.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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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만이 기독교인…종교분쟁으로 ‘생존위협’

지난 6월30일부터 7월15일까지 서남아시아 실론이라 불리우는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스리랑카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오래동안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식민지 통치를 받은 사람들 답지않게 맑고 예의 바른 모습은 우리를 놀라게 했고 당황하게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새로운 땅이라 할 수 있는 그곳을 밟게 되었고, 기도의 장소로 삼게 되었다.

긴 비행시간을 거쳐 밤 12시에 콜롬보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의 사역지인 노튼 브릿지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작은 버스안에서 무려 4시간 반 동안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동안 짐 정리와 함께 잠을 자고 곧바로 사역에 임하게 되었다. 먼저 스리랑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듣게 되었고 그곳의 선교적 상황과 비젼을 선교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현재의 국가적 상황은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으로 불린다. 이것은 스리랑카의 1,884만명 인구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계의 싱할리족(74%)과 소수의 힌두교계인 타밀족(350만명; 18%)간의 뿌리깊은 종족·종교간 갈등과 반목에서 비롯되었다.

1948년 2월 영국의 식민지에서 자유를 찾은 스리랑카는 싱할리족이 싱할리어 만을 유일한 공용어로 채택을 하고, 불교 우대정책을 펴면서 타밀족의 불만을 사게되고, 이로써 스리랑카는 내전의 비극에 놓이게 된다. 이 내전의 비극은 1983년 7월 반정부 폭동의 진압과정에서 타밀족의 대량 학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무력 충돌로 극대화되었다.

그로 인해 많은 타밀의 지식인들이 죽었으며, 타밀족과 싱할리족의 사이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때 많은 득을 본 것은 자칭 무슬림족이라 일컫는 이슬람교도들이었다. 이 때 무슬림들은 많은 부를 축적했고 이로 인해 스리랑카의 새로운 세력으로 형성되었다.

스리랑카의 내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싱할리족인 정부군과 게릴라군인 타밀족과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안정이 없는 상태이다. 또한 저녁 6시 이후에는 거의 모든 도로가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며, 50 미터마다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저녁에는 정부의 공공 건물이나 호텔, 바닷가나 길가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정부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리랑카의 선교비전
스리랑카의 어려움, 종족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으로 사회적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많은 일정 가운데 타밀족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흠모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타문화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문화를 잘 수용하면서 억압된 감정을 종교를 통하여 해소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타밀족계의 신학교는 매우 잘 운영되고 있는데 대부분 깊은 산골이나 농촌지역의 지도자들이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신학교는 2개 정도가 되며, 나머지는 매우 작은 숫자만이 학교에서 공부할 따름이다.

스리랑카내의 교회의 예배형태를 보면 영어로 설교하면, 타밀어와 싱할리어 통역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내에 타밀족과 싱할리족이 함께 예배하기 때문이다. 찬양도 역시 2개의 언어로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 그리스도인들은 이야기한다. 나는 싱할리도 타밀도 아닌 기독인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선교의 비전을 말할 때 기독교인이라는 곳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선교 현장에서 전면전으로 그들과 맞서는 것이나 접촉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지인과 일대일 접촉과 보건 의료 및 구제 사역등을 통하여 접근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 올 수 있다. 이같은 사역은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악하거나 남에게 해를 주려하지 않는 순수함도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사랑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따뜻하게 대한 다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스리랑카를 생각할 때 우리는 힌두교나 불교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학교 혹은 카톨릭 교회가 세운 학교들이 이슬람교도들의 손으로 하나씩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스리랑카를 향한 선교는 종교전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스리랑카의 선교를 위해 시급한 것은 선교사가 타종교와의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적전쟁에서의 승리는 곧 선교의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독교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여 기업을 통한 선교사역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일을 제공하면서 그들을 전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현지 사역자들과의 협력하는 것이다. 한국인 선교사 혹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모두가 각자 주어진 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협력한다면 보다 좋은 결실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리랑카에 대한 정보와 기도의 동역자가 더 필요하고, 신학교 사역을 위하여 후원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도자를 양육하면 그들이 또 다른 지도자를 양육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스리랑카는 먼 나라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가 품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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