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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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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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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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안학교운동의 길목에서<11>

<유영업목사·독수리기독중고등학교 교감>


● ‘다른 친구는 몇 점이니?’

시험지를 들고 가면 부모님들께서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중학교 일학년들에게 물었을 때 들은 대답 중 하나입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지만 위의 말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루었는데, 그 시험지를 받아든 부모가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심지어 그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의 이름을 들먹이며 ‘oo는 몇 점이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심코 말을 던지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웃으면서 사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혼내지는 않으면서 칼날 같은 말로 푹푹 찔러요’. 부모님들 중 어느 누가 자녀의 가슴에 상처를 주려 하겠습니까? 낮은 점수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아이를 일깨우고자 그렇게 하겠지요. 부모의 기준에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자리에 머뭇거리고 있는 아이를 정말로 정신 차리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결코 아이를 깨울 수도 없고, 정신 차리게 할 수도 없습니다.


● 어떻게 해야 까요?

우선, 시험을 치르느라 애쓴 자녀에 대한 진심어린 격려가 필요합니다. 시험은 학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입니다. 어디 학생뿐이겠습니까? 시험은 모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한바탕 전투를 치른 작은 용사에게 부모의 진심어린 격려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시험 점수가 낮을수록 아이는 크게 웅크리게 되고, 부모의 첫마디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이때야말로 부모와 아이가 하나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아시는지요? 마음이 가난할 때, 자신에 대하여 절망할 때, 바로 그 때에 부모는 자녀가 달려가 안길 수 있는 가슴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관심은 같은 반 친구들의 점수가 아니라 자녀가 틀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학생만 되어도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쉽게 따라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녀에게 시험지를 대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측면에서도 이것은 중요합니다. 점수는 아는 것에 대한 측도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에 대한 매우 소중한 측도입니다. 그러므로 점수는 숫자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 속에서 놓치고 말았던 ‘모르는 것’에 대한 측도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는 다 아는 것 같다가 시험지를 받아보는 순간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나게 됩니다. 시련이 닥치기 전에는 믿음이 좋은 듯 했지만 막상 어려운 일이 닥치면 믿음의 바닥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그 자체로서 자녀를 한걸음 전진하게 하는 매우 소중한 도구입니다. 친구와 비교하는 식의 독설로 허비하고 말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정보입니다.


‘모르는 것’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 때 주의할 것은 학생의 위치와 부모의 위치입니다. 부모는 충실한 작전 참모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대장은 자녀입니다. 시험을 치르는 현장에 부모가 가서 대신 칠 작정이 아니시라면 참모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부모가 할 일은 ‘모르는 것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만 강조하면 됩니다.


시험은 친구와의 비교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있는 것을 발견해내는데 의미가 있고, 모르는 것을 알고 넘어가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정말로 쓸모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시험의 의미와 목적을 잘 활용하여 지식의 터를 단단히 구축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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