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07] “한국교회가 저지른 ‘죄’부터 단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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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1907] “한국교회가 저지른 ‘죄’부터 단절해야”
  • 이현주
  • 승인 2006.01.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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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박사에게 듣는 ‘대부흥의 과제’
 

최근 한국교회는 ‘부흥’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90년대 들어서 정체되기 시작한 교회성장이 좀처럼 되살아날 줄 모르기 때문이다. ‘40일새벽기도회’ ‘심령대부흥회’ 등으로 불을 지펴 보지만 결국 성도의 수평이동이 이외에 이렇다 할 결실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중에 한국교회가 선택한 것이 ‘Again 1907’.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나 부흥의 열기를 되살려 보자는 것. 분명 역사적 사건으로 시작된 움직임이지만 역사의식이 그 이면에 깔려 있는지 쉽게 결론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단지 성장둔화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Again 1907’을 외치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1907년 평양대부흥을 ‘대각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강조한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박사의 고견을 들어보았다.


“1907년 당시 수적 부흥의 결과보다 일제 강점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민족적 각성운동이 일어났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 죄를 고백하고 거듭나는 체험을 처음 한 것이었고 기도를 통해 대 부흥이라는 결과가 얻어진 것 뿐입니다.”


이만열박사는 1907년 장대현교회에 모여든 성도들도 하나님과 단절의 원인을 세속적 죄에서 찾아냈으며 절박한 심정으로 토해낸 죄책고백이 결국 참 신앙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며 당시 대부흥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는 대부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0세기가 쌓아온 세속화와 물량주의 등 과거의 죄를 단절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전제될 때 ‘Again 1907’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만열박사는 한국교회가 단절해야할 ‘죄’를 크게 4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 죄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귀족화되어 가고 있는 것.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자신들이 가로채며 성도들을 목사 의존형 신도로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한국교회 성도들에게서 자립도를 찾아볼 수 없고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이 모든 것이 목회자가 자신을 우상화하고 있는 결과라는 것이 이만열박사의 주장이다.


두 번째 죄는 ‘이분법적인 신앙행태’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며 사회 속 크리스천으로 정착하지 못한 점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교회 내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맡은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박사는 사회속에서 기독교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일로 NGO운동을 들면서 특수한 기관이나 진보적 몇몇 인사들만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일은 가정이나 기업이나 모든 삶에서 나타나야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 성도들은 교회 밖에서는 세속적 크리스천으로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관료층에 기독교인이 대다수 포진해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며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머무르는 것은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신앙행태의 결과라고 말했다.


세 번째 죄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것. 기독교윤리는 ▲정직과 신용 ▲근면 ▲정제-절약으로 나타나지만 우리 성도들은 사회를 변화시킬만한 구심점을 갖고 있지 못했다.

특히 선교 12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값싼 은혜’만 강조한 나머지 ‘불로소득’을 축복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근면과 정직을 외면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박사는 네 번째 죄로 복에 대한 개념이 잘못된 것을 꼽았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9가지 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팔복에 이어 사도행전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고난도 축복이고 희생과 나눔도 축복이라는 예수님의 복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내세적인 복, 물질의 축복과 성공, 명예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복의 개념이 주입된 성도들이 자기 희생을 실천할 리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요. 20세기를 보내는 한국교회는 바로 이러한 죄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물꼬를 어디에서 틀 수 있을까. 1907년 대각성의 배경에는 1905년 원산 선교사의 눈물어린 통회와 자복이 있었으며 길선주목사의 민족적 죄의식에 대한 회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회개’를 외면한 채 하나님께 ‘부흥과 성장’만 달라고 채근하고 있다.


이만열박사는 아직까지 소망이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죄책고백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구든 무릎을 꿇고 구체적으로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죄와 단절하지 못할 경우 유럽교회의 미래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면에 내제된 순수한 영적 힘은 밖으로 나오면서 생활과 질서의 변화를 초래한다. 1907년 평양 대각성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고 죄책고백이었다. 성령 1백주년이라는 이름으로 건강과 물질의 부흥, 인간중심적 부흥만을 원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오히려 타락을 부추길 수 있다.


‘Again 1907’이라는 구호가 공허하지 않도록 역사적 대부흥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거듭남을 체험하는 일은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이만열박사의 핵심 논지다.


지난 1백년간 저질러온 죄 값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놓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양과 질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참된 부흥을 한국교회에 선물하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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