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복음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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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복음 전해요”
  • 현승미
  • 승인 2005.09.1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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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자 전도부터 양육까지 책임지는 전도왕 김영옥 권사

“오늘 저녁에도 아픈 사람 전도하러 가야해요. 며칠 전에 만나 제 명함을 건넨 사람인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김영옥권사(59세, 은평성결교회)는 지난 11일 주일날에도 전도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복음은 누룩처럼 전해지는 것입니다. 매일 거리를 지나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매주 이틀을 정해놓고 유치장이나 병원을 찾아다니며 전도합니다.”


한 유치장에 최소 10명 이상이 법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고, 지역 내 유치장이 두 곳이니 그의 방식대로 꾸준히 전도한다면 일주일에 20명씩 1년이면 벌써 1천명에 가까운 이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된다.


전도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영옥권사의 전도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방침이 있다. 한 번의 전도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들의 삶과 신앙생활까지 지켜보며 지속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전도를 하다 보니 양육의 중요성도 실감하게 됐어요. 아무리 많은 사람을 전도해도 이후 그들의 신앙생활을 책임지고 보살펴 주지 못하면 신변상의 이유나 출석하는 교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금세 교회에서 발길을 돌리더군요.”


최소한 성경에서처럼 젖먹이 신앙이 걸음마신앙이 될 때까지는 누군가 옆에서 끌어주고 보살펴줘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동안 전도한 이들을 양육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김영옥권사. 


이런 실정이다 보니 김 권사가 구역장을 맡고 있는 구역은 매번 그가 전도한 새신자들로 채워졌다. 교회에서 전도뿐만 아니라 새신자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양육할 수 있도록 아예 새로이 한 구역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강한 믿음과 전도의 사명을 지니기까지 그에게도 하나님에게 도전하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를 제대로 이끌어줄 전도자나 멘토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시골 천막교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랫방에 사는 고학생 전도사님이 돈도 필요 없고, 오직 하나님만 있으면 산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전 어린마음에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로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그는 ‘성경’과 ‘복음’, ‘구원’, ‘죄인’ 등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자신의 궁금증이 해결되면 다시 발길을 끊곤 했다.


그 이후로 불교집안에 시집을 가게 됐고 교회와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 시부모를 따라 절에 가서 두꺼운 불교 교리서를 읽어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갈급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 당시 꽤 부유한 가정으로 시집을 갔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이미 시댁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고 가세가 기울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시부모와의 갈등이 시작됐고,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하기만 하는 남편도 업신여기게 됐다.


오직 아이들만 바라본 채 힘겨운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김 권사는 결혼 13년 만에 다시 교회와의 연을 맺게 됐다. 


“순복음교회에 다니는 한 권사님이 저희 집에 신문을 넣어주셨어요. 그분께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순복음교회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집안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교회에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진 않았지만 성경말씀에 목말라 있던 김 권사는 어느 날 성경연구를 하자는 두 사람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매주 목요일 그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너무너무 달고 귀한 말씀에 너무 행복했지요. 그런데 대여섯번쯤 성경공부가 진행됐을 때 갑자기 그들이 기독교 교회를 사탄, 마귀로 몰고 가더군요. 내가 하나님은 알아도 예수님은 알지 못했구나 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교회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먼저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사람들을 따라 두 달을 작정하고 그들이 소개해준 ‘왕국회관’을 다니게 됐다.


“저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아들을 이전부터 다른 교회에 보내고 있었는데, 아들을 데리고 왕국회관에 가게 됐지요. 그런데 4살박이 아들이 그러더군요. 그들이 준 책에 성령이 아닌 사탄이 동방박사를 이끌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고요.” 


불교, 여호와의 증인, 기독교까지 다양한 종교를 접한 그는 세상에 하나님은 너무 많지만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살면서 여러 사람이 저를 전도하려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제게 구세주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전해준 이도 없었지요.”


단 한명이라도 복음에 대해 확실히 전해줬다면 교회를 떠나있던 38년간의 방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김영옥권사.


특별히 최자실목사의 간증집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를 통해 복음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됐다는 그는 전도자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기 시작했다.


“제 동생들 영자, 영순, 영철이부터 전도하기 시작했지요. 물론 처음부터 제바람대로 전도가 되건 아니었어요. 막내 동생 영순이는 교회를 다니고 믿는 집안에 시집을 가서도 기도할 줄 몰랐고, 영철이도 사업이다 뭐다 욕심을 내며 교회를 멀리하기도 해 연단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남을 위하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기 것을 쪼개어 진정으로 남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언니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일까. 막내 동생도 언니를 따라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고, 남동생은 한 돌도 안 된 아이들까지 데리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만나 기뻤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만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시부모님도 사랑하게 됐다. 시부모를 조용히 섬기는 남편도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제가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행복해서 자꾸 웃으니까 아들이 엄마가 예배를 다 망친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실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더군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상당수가 김영옥권사를 꺼려하지 않고 순종하며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자신은 그저 성령이 이끄는데로 열심을 다할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친정 가족부터 올곧은 성품으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시부모까지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으며, 3년간의 기도 끝에 타종교를 믿던 자신의 친구 ‘김여심’을 전도의 동역자로 세우게 됐다.


그러던 중 88년도에 한 기독교방송국에 자신의 간증수기를 보내게 된 것을 계기로 전도의 동역자였던 김여심집사와 함께 두 차례 방송에 출연하게 됐고, 방송을 본 목회자들의 요청으로 신앙간증도 하게 됐다.


오랫동안 짝을 이뤄 전도를 다니던 중 김여심집사의 개인사정으로 혼자서 전도를 다니게 됐을 때 그가 출석하고 있던 은평교회의 이병돈목사님께 그간의 신앙사례를 모아 ‘전도지’를 만들 것을 권유받았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게 손바닥만한 작은 사이즈로 만들었는데, 우연히 만나 초등학교 동창 목사님이 자신이 시무하고 있는 LA에 가져가겠다면 더 큰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그가 겪은 간증들을 엮어 ‘내가 체험한 하나님(나됨 출판사)’이라는 신앙간증집을 내게 됐다. 이 또한 자신이 직접 갈 수 없는 해외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한 하나님의 일일뿐이라며 출판사에 책 값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는 김영옥권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가 만나게 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적금을 들고, 유치장이며 병원을 다닐때도 꼭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고 온다는 그에게서 진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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