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먼지 가득한 태백 폐광촌에서 희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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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먼지 가득한 태백 폐광촌에서 희망을 꿈꾼다
  • 김찬현
  • 승인 2005.09.07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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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마을 주민과 20년 동고동락한 원기준 목사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그곳은 흔히 말하는 폐광촌이다. 한때 우리나라 석탄생산량의 30%가 생산되면서 우리나라 최대의 광산도시로 이름을 날리던 이곳이 이제는 사양길을 넘어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탄광촌이라고 불리던 그곳이 이제는 폐광촌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이다.

삶의 터전인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태백은 눈에 띄게 바뀌어갔다. 곳곳에  사람이 떠나 텅비어버린 빈집들이 무성하며 시커먼 석탄가루가 아직도 흩날리고 있다. 그러나 폐광한지 10년이 지난 회색 도시 철암동에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 이곳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태백에서 살기 시작한지 20년에 접어든 원기준목사(태백선린교회). 그와 태백의 인연은 1985년 원목사의 신학대학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백에 광산촌봉사활동을 온 원목사는 처음 탄광촌을 경험하게 됐다. 당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그에게 탄광촌에서의 봉사활동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원목사는 85년 12월 마침내 태백시에 있는 황지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탄광촌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세상 속에서 교회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의 삶이야말로 적격이었던 셈. 교회에서 교육전도사와 교회 부설로 운영되던 ‘기독교광산지역사회개발복지회’의 간사를 맡아 사역하면서 광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정의를 세우고 사랑을 전하는 교회


그러던 중 그는 그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8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의 조사를 받게 되고 이것 때문에 섬기던 교회에서 쫓겨나게 됐던 것이다. 이때 감옥에 갇혀있던 그를 위해 석방운동을 펼쳐준 신성식목사(전 태백선린교회 담임목사)를 만나게 되고 이후 그는 교단을 옮겨 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가 된다.

태백에서 광원들의 인권을 위해 계속 앞장서던 그는 결국 다시한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 때부터 감옥에 갇혀있는 그도, 그가 살고 있던 태백도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정부의 정책적인 탄광촌 폐광화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목회자가 되어서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교회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야한다는 결론을 얻은 거죠.”


오랜 시간동안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은 그에게 확고한 교회의 사명을 심어줬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정의를 바로잡고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정의와 사랑 모두 교회의 사명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없는 사랑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메마를 수밖에 때문에 세상 속에서 교회는 사랑과 정의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를 위해 원목사는 몇 가지 시도를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애아 아동시설인 ‘태백 사랑의 집’이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시작한 게 바로 ‘태백 사랑의 집’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1991년 당시 강원도 전역에 장애아 교육기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특수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교사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는 또 폐광으로 인해 어려워진 태백지역을 살리기 위해 연구소도 설립했다.

“폐광으로 인해 생긴 실업자와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광산지역 사회연구소’였습니다. 89년 이후 탄광촌이 몰락해가면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교회가 점차 비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목사가 시작한 것이 폐광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이었다. 당시 탄광촌의 폐쇄와 동시에 직장을 잃은 사북, 정선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태백시 여러 교회들도 여기에 동참하게 되면서 ‘특별법 제정 주민연대회의’가 세워졌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을 약속했고, 이후 정선지역에 주민들의 생계보장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카지노가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계대안으로 제시된 카지노 사업은 또다른 폐해를 불러왔다. 카지노 사업의 혜택을 받는 지역과 받지못하는 지역간의 지역 감정 악화와 도박 산업이 성행하게 되면서 생기는 폐해들이 그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도박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는 원목사는 이후 카지노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새로운 대안 ‘철암 어린이 공부방’


“당시 특별법 제정으로 인해 폐광지역인 강원도 정선에 카지노가 들어설 것은 확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탄광촌 주민들에게는 카지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강원랜드가 들어서면서 폐광지역을 위한 85개 사업이 있었지만 그것도 IMF상황 때문에 공공사업 외의 민간 자본이 투자되는 사업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폐광지역이 이제는 강원랜드 중독증이라는 중병을 앓기 시작한 거죠.”

이런 폐광 지역을 위해 원목사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단 교회를 카지노 사업의 핵심 지역인 정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철암으로 옮겼습니다. 교회를 옮긴 이유는 무엇보다도 폐광촌의 형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는 곳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철암에서 시작한 것은 ‘철암 어린이 공부방’.


공부방에는 현재 5천여 권의 책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에게 공부방 프로그램을 통한 다양한 대안 교육을 진행 중이다. 폐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웃음을 잃어버린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이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꿨다는 원기준목사. 처음 공부방을 시작했을 때는 잘 웃지도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 공부한다. 아이들 속에서도 작지만 단단한 희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믿고 있다. 그의 입가에 흐르는 미소 속에서 폐광촌의 밝은 미래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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