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 우간다 도착하자마자 `눈물`

2005-02-17     운영자
 
 
 이 글은 백석대학교회(담임:오진환목사) 선교단(단장:박찬석장로) 일행 11명이 지난달 10일부터 24일까지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여행을 다녀오면서 느낀 소감과 감사의 마음을 선교단 회계를 맡았던 변성원 집사가 적은 글을 요약한 것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해외선교를 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지난 여름 농촌선교를 다녀올 때였다. 선교라는 것이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채우고 돌아온다는 것을 세 번의 농촌선교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농촌 선교를 통해서도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는데, 해외선교가면 더 많은 은혜를 체험하겠군요! 다음엔 열심히 준비해서 해외선교 갈께요.”

얼마지나지 않아 해외선교 장소가 아프리카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 나는 아닌가보다. 여름을 너무 싫어하고, 벌레도 너무 싫어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들만 총 집합한곳이라니...이건 내가 해외선교갈 군번이 아니기 때문에 장소가 아프리카로 정해진 것 일거야.’ 일찌감치 해외선교를 포기하였다.

전국 병원 평가단 일로 전주 예수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프리카행을 결심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병원장님의 첫 인사 말씀이 아프리카에서 온지 일주일도 안되셨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가슴이 뛰고, 머리가 멍해졌다. 이미 포기한 아프리카를 왜 다시 듣게 되고 또 이렇게 가슴이 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가 첫날 전주예수병원 내에 의료선교 100주년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100년 전 한국 땅에 복음을 들고 들어온 선교사들의 모습과 100년 후 이땅의 변화를 직시하게 되었다.

이번 선교는 개인적으로 모험을 건 도전이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우간다행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 난 자유 할 수 있었다. 왜?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이 뜨거운 땅! 아프리카에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고, 우리가 왜 아프리카 땅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그곳에서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프리카를 사랑하게 되고, 아프리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첫째 날 - 홍콩거쳐 방콕으로

1월10일 04:10 팀원 중에 교회에 제일먼저 도착을 했다. 늦을까봐 밤새 뒤척인 보람은 있지만, 출발 전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새벽 4시30분쯤 모두들 도착 하였고 찬양과 기도로 예배를 드리고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출발 하였다. 설레 이기도 하고 두려운 기분 등이 교차되면서 우리의 선교 여행은 시작 되었다.



06:30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이 시작 되었다. 짐이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보다 짐 무게가 많이 나갔다. 개인당 25kg 인줄 알았는데 20kg (+5kg초과 가능)라고 한다. 국가별로 무게가 다르지만, 아프리카 쪽은 20kg라고 한다. 대부분의 짐이 화물로 실어졌으나 문제는 다시 시작되었다. 앰프와 스피커, 기타를 기내로 들어갈 작정이었는데, 기내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짐은 이미 다 실어졌고, 추가 무게를 적용하여 화물을 보내려니 무려 60만원의 돈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스피커를 포기해야 했고, 기타는 13만원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짐의 정리순서 및 기내반입 규격 등(스피커, 크기..)에 대해 확인하지 않은채 가능하리라 생각한 점이 실수였다. 기내반입이 안되는 물품들로는 스프레이, 칼종류, 쇠? 쓿?등 무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이었고 등산가방 10kg 정도는 개인이 기내로 가지고 갈수 있으니 짐을 정리할 때 특히 단체 짐이 많을 때는 개인10kg 정도는 기내로 들고 가도록 포장단위를 나누어 분담을 하고 나머지 짐을 화물로 싣도록 미리 고려되어져야 할 것이다.



06:30 도착해서 09:20 되어서야 비행기 좌석에 앉을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짐을 보내고 탑승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짐무게로 인해 신경을 쓴 탓인지 정말 피곤하다.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웬일로 좌석이 날개 위를 벗어나 경치 감상하기에 좋은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두 시간 가량(11:21) 비행시간이 지나니 점심식사가 나왔다. 아구찜과 쇠고기 중 쇠고기를 선택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대이상으로 음식이 맛있었고, 특히 커피 맛은 일품이었다.



12:00 기내 화장실 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여행이라고 해봐야 제주도와 일본이 다인 나로서는 기내 화장실 이용이 처음이라서 비행기 안의 화장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였다. 일단은 문을 여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만져보았지만 열리지가 않아서 팀貶“?물어보았더니 그냥 밀면 된다고 했다. 정말 그냥 밀면 되네! 조그만 공간에 있을 것은 다 있었다.



12:26 팀원들 대부분이 잠이 들었다. 난 커피3잔 연거푸 마신 덕분에 잠이 안 온다. 앰프와 스피커, 기타 한대를 못가지고 온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마이크도 없이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럽고 답답해졌다.



고린도후서 묵상중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느니라(고후3:18).”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의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가리운 수건을 벗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원합니다. 아멘.



12:56 홍콩(쳅랍콕) 공항착륙을 위해 준비 중이다. 3345m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으로 이루어진 홍콩은 신비로워 보인다. 쳅랍콕 공항에서 9시간을 버텨야 한다. 일단은 다시 탑승할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의사소통의 문제인지, 장소의 복잡성문제인지 우리는 헤매고 있었다. 벌써 같은 장소를 세 번째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거기다가 팀원 중 한명의 짐이 탑승하다가 짐의 크기가 크다고 화물로 뒤늦게 실어진 짐이 있었는데 그 짐이 홍콩공항으로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두 명의 대원은 짐을 찾으러 홍콩을 입국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Transfer(W1) 장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두 명의 대원을 기다리면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폴카댄스, 사영리 연습을 하였다. 외국이라는 장소 때문인지 나는 자유 함을 느꼈다. 한참을 기다려도 두 명의 대원이 들어올 생각을 안 ? 磯?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때 안내원이 다가왔다. 밖에서 호출이 왔는데 두 명의 대원이 다시 탑승할 시간까지 공항내로 들어 올수가 없기 때문에 나머지 팀원들도 다 홍콩으로 입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홍콩 땅을 밟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5:00 식사를 위해 일본식 우동전문점(Hui Lau Shan)에 들어갔다. 김치도 주문 할 수 있었지만, 맛은 좀 떨어졌다. 한국을 떠 난지 몇 시간도 안 되서 한국음식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식사가격은 개인당 40홍콩달러(40/7.2*1,100=6286원)로 한국보다 물가가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16:00 팀 미팅을 하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진행사항을 점검하면서 문제점 및 앞으로의 진행 사항 등을 토의하였다. ‘우간다’라고 하는 목적지에 대한 준비에만 초점을 두다보니 가는 과정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공항이용에 관한 사항 이라든지, 경유공항에서의 경유 과정 등에 대해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점이다. 각 공항 이용에 대해 좀더 철저한 정보수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6:30-17:00 쳅랍콕 공항 내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홍콩시내까지 접근하기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어려울 것 같아 공항 내에서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둘이서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기도실이 눈에 띄었다. 공항에 기도실 있다는 것이 반가 왔다. 다중기도실이었지만,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팀장님을 모시고 합심 기도를 했다. 나머지 대원들도 삼삼오오 합류하여 기도를 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기도를 원하셨음을 또한 앞으로도 계속적인 기도가 필요함을 인식하는 시간이 되었다.



18:20 케냐항공 탑승직전에 김해룡 전도사가 이끄는 포항 대도교회 청년부 선교팀을 만났다. 아프리카의 Burundi 라는 곳으로 찬양집회인도를 위해 가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사람 그것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아프리카를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니 힘이 되고 매우 반가 왔다.



18:30분 케냐항공(KQ 231) 33H 15시간 비행을 위해 자리에 착석하였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녀서인지 어깨가 욱신거렸다. 아프리카행이 맞기는 맞나 보다. 어느새 흑인들이 많은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나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속의 아프리카는 넓고 내가 아는 국가나 지명보다는 모르는 국가나 지명이 더 많았다. 아프리카의 넓은 광야와 초자연적인 환경에 도전이 되고 설레인다.



김춘수 선생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내가 아프리카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아프리카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음을...내가 아프리카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아프리카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21:30 지금 뱃속은 전쟁 중이다. 신체적 활동은 제한적이고, 들어오는 음식들은 고지방, 고탄수화물들이다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장이 불편한 것 같다. 소화제를 찾고, 화장실이 만원이다.



둘째 날 - 케냐거쳐 나이로비 도착

1월11일 00:45 방콕에 도착! 1시간가량을 기내에서 대기한다고 한다. 방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승무원도 바뀌었다.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든 나를 좌석확인하며 이름 묻는 승무원이 깨웠다. 대원 모두가 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거의 이틀을 잠도 못자고 먹기만 해서인지 대원들의 얼굴이 달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원들은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어 가고 있었다.



05:40 지금 나는 인도양위에 떠 있다. 라디오에서는 아프리카 냄새가 흠신 풍기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3시간은 더 비행해야 할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얻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잠8:17).”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한해가 되어야 함을 함께 나누었다.



06:36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하였다. 60년대 영화에서 본 듯한 비행장 분위기였고, 약간 후덥지근한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나이로비에서 엔테베공항을 가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08:45분 드디어 엔테베 공항에 도착하였다. 주변사람들이 흑인이라는 것 말고는 우리나라 제주도 공항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낯설지가 않았다. 마지막 엔테베 관문을 통과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다소 있었다. 생각보다 까다롭게 물건들을 체크하였다. 달력과 대학홍보물, 신라면박스, 풍선과 볼펜들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 들었고, 영어에 능통한 한 대원은 열심히 대적하여 여기에 온 목적과 물건들의 의미를 설명을 하였다. 모두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열심히 기도를 한 것 같다. 통관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모든 물건들이 안전하게 공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송인진 선교사님과 드디어 상봉을 하였다. 아프리카의 땅을 밟았다는 사실과 이곳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면서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저 같이 작은 자의 발걸음을 이곳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빅토리아호수를 끼고 달리는 차안에서 내다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50-60년대 사진을 보는 듯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먼지를 뒤집어쓰고 걸어 다니며, 그나마 좋은 교통수단이 자전거인 것 같다. 봉고차 모양의 택시가 있긴 한데, 대부분 버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 듯 사람들이 다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일정한 노선이 없고 타는 사람들이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준다고 한다. 인내심과 기다림에 통달한 사람들 같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전주 예수병원의 선교 100주년 역사관을 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 알 것 같다.

숙소를 가는 길에 먼저 들른 곳이 김용호 목사님께서 섬기고 계신 All Nations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 신학교에 들렀다.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라는 문구가 우리를 반겼다. 1 993년 2년제 학교로 설립되었다가 3년제로 학제가 바뀌었다고 한다.

 

먼저 이곳에서의 사역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첫째. 영적지도자의 신학훈련 부재와 관련하여 영적 신학훈련 필요. 둘째. 정치 불안, 정권타락으로 국민의 고통이 심함. 셋째. 교회 신앙 제자훈련 부재(성경말씀 훈련 부재). 넷째. 부족주의 분열과 대립. 다섯째. 전통종교의 영향력이 강함(미신, 무당). 여섯째.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현상(참된 구원의 확신 부재).



그리고 이곳의 사역을 위해 기도부탁을 받았다.

첫째. 신학교 강사 절대부족(초교파적 협력사역 필요). 둘째. 선교사 가정에 대한 건강 및 평안을 위해. 셋째. 학생들이 훌륭한 영적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넷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다섯째. 한국교회가 이 귀한 사역들을 계속 감당 할 수 있도록. 여섯째. 김용호 목사님 사모님의 귀가 안 들리는데 회복되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비전을 바라보게 되었다. 광활한 대지위에 교회와 신학교와 Guest House와 학생들의 기숙사를 둘러보며 가슴이 뛰었다.



<계속>



                                                     변성원집사(백석대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