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수고로운 인생도 하나님 의지하면 기쁨 가득

전도서 19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전 8:15)

2021-05-18     유선명 교수

앞서서 왕에게 복종하는 것의 현명함을 가르쳤던(8:2~6) 전도자는 이제 권세의 어두운 면을 설명합니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9절) 권세자가 억울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돈을 착복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즉 남의 인생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으로 해악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비할 데 없는 권세를 누렸던 전도자의 말이기에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전도자는 연이어 불의와 악에 대한 성찰을 이어갑니다.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10절) 하릴없이 이는 바람과 흐르는 물을 보면서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은 잊힌다고 탄식했던 전도자가(전 1:1~11) 악인의 망각을 여기서 새삼스레 애달파했을 리는 없습니다. 전도자가 ‘헤벨’(헛됨)이라 부른 것은 사람의 행동에 대한 공정한 판단과 상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악인들도 장례에서 좋은 말로 추모되고 근사한 무덤에 묻힌 뒤 조용히 잊히는 현실입니다.

악인의 악행이 드러나고 처벌받아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야 할 텐데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이것도 ‘헤벨’이라는 탄식이 나온 것이지요(8:10). 정의란 모름지기 신속, 정확하게 집행되어야 사람들이 나쁜 짓을 못 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집 담을 넘는 순간 500볼트 전기가 온몸에 흐른다면, 빨간 불 신호등을 쌩하고 지나가는 즉시 범칙금 통지서가 문자로 날아온다면, 법을 지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적발은 드물고 처벌은 가볍다 보니 사람들이 겁 없이 죄를 짓습니다(11절).

백 번이나 죄를 지어도 아무 일 없이 천수를 누리는 인간들이 많아 보입니다(12절). 전도자가 말합니다: “또한 내가 아노니...” 자신과 독자가 공유하는 지식과 전통, 교리를 상기시키는 화법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9:12-13)

전도자는 진리에 동의만 하지 말고 스스로 곱씹어보라고 초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형통하고 악한 길을 택하면 망합니다. 우리가 다 믿지요. 하지만 우리 경험은 그것을 의심하게 합니다. 전도자는 욥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당신의 믿음은 경험을 지나 의심을 넘어선 진정성 있는 믿음입니까? 욥은 자신에게 닥친 불가해한 고난의 용광로에서 믿음을 시험받고 정련된 사람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전도자는 세상의 부조리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씨름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그렇게 삶의 헛헛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힘겨운 짐을 지고서도 삶의 분복을 즐기라고 권합니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8:15)

해 아래 있는 수고로운 내 인생.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 내 인생인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삶을 망치는 허탈감과 분노로부터 우리를 놓아주는 이 해방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다윗과 함께 노래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 68:19)

백석대 교수·구약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