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편지들 비텐바흐에게, 1523년(3)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04

2020-08-25     주도홍 교수

주의 몸은 하늘에 
츠빙글리에게 그리스도는 승천 후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또는 땅에서는 믿는 자들의 마음에 계셔야만(muessen) 하기에, 그리스도는 영혼의 양식이 될 뿐, 그 어떤 인간의 손에 들려져 그의 살과 피가 먹혀질 수 없다. 요 6:51이 말하는 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를 믿는 믿음이 중요하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가 성찬의 주제여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말씀한 대로 사람들은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먹으면 된다. “받아먹으라!” 이는 손으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영의 양식을 마음으로 받아먹으면 된다. 말씀을 주의하여 잘 보면, 먼저 먹도록 허락한 후, 그것이 그의 몸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가 그의 몸을 제공한 후, 먹으라고 말하지 않고 있음이다. “자, 보아라. 너희를 위해 제공한 내 몸이다. 그러므로 받아먹으라!”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순서로 주님이 말했다면, 그리스도의 몸은 그가 먹히지 않은 곳에서도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먹도록 제공하셨는데, 곧 주님은 단지 그를 먹는 곳에서만 그 몸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믿음으로 먹음이 먼저고, 그의 몸은 후에 따라온다는 말이다. 이는 믿음을 갖는 자가 세례를 받을 때 그 효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믿음 없이는 세례도 성찬도 그 어떤 능력도 없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강조되어야 할 것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다. 성찬의 모든 것은 믿음에 달려있다. 거기로부터 성도는 확신과 평안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 외 일에 염려하고 머리를 쓸 때, 화체설과 같은 우상숭배(Goetzendienst)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 예로, 성찬의 빵이 주의 몸으로 변했다고 해서, 교회 보존함에 그 빵을 두게 될 때, 그 빵을 숭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공개 표명 
바로 이 부분에서 열띤 토론을 거쳐 츠빙글리에게 확실하게 해야 할 점이 있는데, 어떻게 유일무이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마땅히 섬겨야 할 것인지이다. 그러면서 츠빙글리는 비텐바흐의 견해를 유인물을 통해 듣기를 원한다. 세상이 비텐바흐의 분명한 성찬 이해를 라틴어로든지, 독일어로든지 공개적으로 알기를 바란다는 간절함을 츠빙글리는 표방한다. 이는 바른 신앙을 세계에 확실히 알려야 함을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강조한다. 

이를 위해 비텐바흐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그 어떠한 고난도 받아들일 기쁜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비텐바흐를 종교개혁의 동역자로 불러내려는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외침이라 할 수 있겠다. 츠빙글리는 편지를 마감하며 종교개혁 동지의 안부를 비텐바흐에게 전한다. ‘그리스도 복음의 조력자’ 유드(Leo Jud)와 한결같은 복음의 신실한 종이며 퀴스나흐(Kuensnach) 교회의 담임목사이며 목자인 슈미트(Konrad Schmid)의 안부이다. 그들은 비텐바흐에게 동역의 용기를 불러일으킬 인물이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