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다섯째주 가정예배

2019-06-25     운영자

월요일 / 왜 우리를? / 사도행전 26:16~18 / 찬송: 324장

성경 저자로 사도로서 바울의 그 대단함에 이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는 요즘 말로 하면 태생적으로 금수저였으며 평생을 엘리트 집단에 속해 스카이 캐슬에 살 수 있었던 상위 1%의 집단에 속해 있었는데 그것을 스스로 포기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이 놀라운 가치관의 변화는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삶을 이끌어 갔습니다. 노동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매를 맞으며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독신의 삶을 자청하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려는 일에 자신을 희생 재물로 내놓겠다는 고백과 함께 그렇게 살아갑니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를 믿어 흙수저의 인생이 바뀌어 금수저의 성공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부르시며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고,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게 하기 위해 바울을 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목적을 이루어도 공허하고 가진 것이 많아져도 만족이 없는 것은 이런 목표를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도구가 될 때 세상적으로는 흙수저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금수저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류기성 목사 / 머릿돌교회

 

화요일 / 부족함이 없는 생활 / 시편 23:1~6 / 찬송: 435장

오늘날을 어떤 시대라고 표현하면 좋겠습니까? 지구촌에는 육신적으로 기갈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기갈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4절)같다고 할찌라도 믿음의 역설은 “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고 밝힙니다. 그러면, 이 풍족한 삶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선한 목자를 바로 아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1절).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이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한 비결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데 있습니다.

여호와만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자신이 “선한 목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실족지 않게 보호할 능력이 있습니다.

나의 선한목자를 바로 따르는 데 있습니다. 선한 목자만이 바로 인도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 합니다. 영육간에 부요하고 풍부한 생활에로 이끌어 갑니다. 뿐만 아니라 “쉴만한 물가”로 안내합니다.

선한 목자 만이 내 영혼을 소생케 합니다.(3절) 인간을 따라가면 영혼이 곤비하고 마침내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가면 내 영혼이 소생케 됩니다.

•오늘의 기도

선한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만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임요한 목사 / 인천한영교회

 

수요일 / 변화의 체험현장 / 고린도전서 15:51 / 찬송: 478장

애벌레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하면 돼. 애벌레로 사는 것을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그럼,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이는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애벌레로부터 번데기가 되어 나비의 모습으로 변하는 ‘나비화’의 과정을 묘사한 유명한 대목입니다. ‘나비화’의 필연적인 과정인 번데기는 참으로 신비합니다. 그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징그런 애벌레가 나비로 바뀌는 오묘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바로 이 번데기 안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의 변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묘막측한 변화가 생겨나는 번데기와 같은 곳이 바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정보(information)’를 얻는 곳이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가 생기는 신묘막측한 변화의 현장입니다. 이곳에 오면 주님을 만나 죄인이 의인으로, 걸인이 왕으로,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우리 모두 기쁘게 이런 변화의 체험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 변화하리니.’ 기쁨과 설렘으로 변화의 체험현장을 확장해 머무는 그 곳이 또 하나의 변화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변화의 체험현장으로 가게 하소서! 아멘.

장현승 목사 / 과천소망교회

 

목요일 / “그리스도인의 행복” / 로마서 8:1~6 / 찬송: 264장

국어사전에 행복(幸福)은 욕구가 만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로 나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로마서 8장 37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은 승리의 선언이며 그리스도인의 행복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어떻게 주어지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문제에 대해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죄 짓지 않고 살면 좋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문제는 죄 의식이 더 힘들게 합니다. 나면서 소경된 자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 저자가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누구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죄 문제는 주의 소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 맡기면 죄에서 해방되는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세속적인 것으로 행복하기보다는 영적인 것으로 행복해 하는 주님께 속한 영적인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박성국 목사 / 평강의교회

 

금요일 / 용서와 사랑의 빚 / 마태복음 18:23~35 / 찬송: 286장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와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왕에게 빚진 신하처럼 돈으로 살 수 없고 조건 없는 탕감을 받았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멸망만이 예비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웃을 마땅히 용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축복의 문도 막힌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우리는 이웃에게 용서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왕에게 용서받은 신하처럼 용서의 빚, 사랑의 빚을 갚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신 용서와 사랑도 거두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왕이 왜 화가 났습니까? 자기는 엄청난 빚을 탕감받았으면서, 남의 작은 빚도 탕감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과 이 사람의 차이는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노하신 것입니다. 33절입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이 빚을 갚지 않는다면 구원마저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빚과 사랑의 빚을 감사함으로 갚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 내게 용서가 머물게 하는 비결이고, 사랑이 머물게 하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도 용서와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

문강원 목사 / 원천교회

 

토요일 / 강하고 담대하라 / 여호수아 1:1~6 / 찬송: 301장

축복의 기회는 우연하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우리 삶에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붙드는 사람은 항상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확신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두려움이 반드시 나쁜 반응은 아닙니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품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역사를 이끌어야 할 책임 앞에 여호수아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긍정의 마음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믿음의 삶은 오늘 마주한 삶의 환경을 항상 열정으로 긍정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백 년을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열정으로 긍정으로 마주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고, 확신과 긍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반응이나 태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내 삶에서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며 불평하는 사람은 오늘 내 삶을 책임져 주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열정을 담고, 최선을 다하고, 긍정과 확신으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붙들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유용원 목사 / 한승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