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脣亡齒寒)

김종생 목사/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2019-06-04     김종생 목사

러시아인이면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박노자 교수는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각자도생입니다. 자기편 없이 외롭게 홀로 싸워야 하는 각자도생의 상태가 지금의 한국사회라고 하겠습니다”라고 한국사회를 정의했다. 우리 사회가 ‘각자도생’이라는 정의에 공감하며 ‘상호의존적인 존재’가 되어 상생의 길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10년도 더 되었지만 서해안 기름유출사건이 터졌을 때 피해를 입은 현지의 주민들은 한결같이 “바다가 죽으니 사람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심과 실수로 저질러진 폐혜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피해로 되돌아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온 국민을 화재의 트라우마로 몰아갔던 강원도 고성과 속초의 산불은 순식간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만들었다. 산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지내던 우리들에게 산은 늘상 그렇게 그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사람을 살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와 산의 고마움은 그것을 잃고 나서 엄청난 재난의 고통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과 자연은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하루도 먹을 것과 떨어져 지낼 수 없다. 우리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을 섭취함으로서 생명을 연장해 가고 있다. 일본의 야마기시 공동체는 닭을 기르는 공동체로 알려져 있는데 달걀을 꺼내러 갈 때든지, 폐계로 닭을 잡아 팔아야 할 때 닭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음식은 곧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전제하고 그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우리 생명은 연장되어 가고 있다. 비단 음식만 그런 걸까?

사람들의 관계는 더욱 상호의존적이다. 부모에 의해 태어나 양육되고 친구와 스승에 의해 사회성을 배우고 공동체적인 성숙을 경험하면서 홀로의 독립된 존재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본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어서 많은 경우 자신의 이해관계로 사람을 선택하고 가치를 선택하며, 직장을 선택하고 종교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나뉘어 적대적인 공격성을 보이고 있고, 안보와 경제가 서로 다른 가치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고,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입장과 신념을 이야기 하지만 과연 무관한 것일까? 북한의 식량난과 북한의 전쟁위협은 우리 남한과 관계없는 것일까? 국내정치와 외교 관계는 무관한 것일까? 정치와 경제는? 우리는 이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실존함을 부인할 수 없다. 국내는 물론 지구촌 모두는 상호연관되어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처럼 가까운 사이에 있는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호 의존적인 관점은 우리들을 더 너그럽고 부드럽게 한다.

진정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해법이 필요한 때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미래를 책임질 상생의 힘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미래와 발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주님은 일찍이 상생의 삶을 이렇게 표현해 주셨다(요 4:36~38).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길은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두는 것처럼 오늘의 성과는 다른 이의 노력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감사하며 나누지 않고 나 홀로 독점하는 것이야말로, 아니 나 혼자 거두려는 욕심을 버릴 때만이 비로소 공멸이 아닌 상생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우리가 뿌리고 때로는 거두지 못하기도 하고, 우리가 뿌리진 않았지만 거두는 은혜를 입을 때도 있다. 구분을 해 볼 수 있어도 분리는 어려운 세상 곧 한 공동운명체로 살아가는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