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도 나를 살려주셨을까?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2018-12-10     노경실 작가

누가복음13:1-5>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오늘 밤부터 강추위가 온다는 소식이 스마트폰에 떠올랐다. 언제나 첫추위나 첫더위가 무서운(?) 법. 더구나 내일은 지방으로 강연을 가야 하기에 새벽부터 나서야 한다. 귀가한 나는 이런저런 소소한 일을 한 다음 샤워를 하려는데 아파트가 흔들릴 정도로 굉음이 나더니 구급차 소리와 그 외에 다른 종류의 심각한 비상 울림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뒤, 사람들의 비명소리까지 났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은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SNS를 일절 하지 않으니 그것은 열어볼 수 없었다. 급히 베란다로 나가보니 온 동네가 새벽안개에 잠긴 듯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다급한 방송이 나왔다. “온수관이 터져서 뜨거운 물이 흐르니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안내 방송을 하는 사람도 놀란 상태인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갔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도로에서 사고가 난 것이었다. 그리고 2~30분 지났을까. ‘사망자 발견’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내가 바로 2시간 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무심하게 지나온 길에서 말이다. 그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나는 마치 내 눈 앞에서 죽음을 본 사람처럼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의문이 생겼다. ‘하나님은 왜 이번에도 나를 살려주셨을까?’ 예전 일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친구가 삼풍백화점 1층에서 니트 종류의 수입 옷을 판매하는 매장을 열었기에 다녀왔었다. 백화점 붕괴 3일 전에. 붕괴되는 시간, 친구는 지하 식품 매장에 갔다가 아슬아슬하게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이때도 나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셨을까?’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 전에도 숱하게 죽음의 순간을 건넜기에.

불과 4 년 전에는 백석역에 있는 홈플러스 지하1층(지금은 일산 교보문고가 되었음)에서 불이 나서 6명이나 사망하는 대참사가 있었는데, 이때도 나는 바로 하루 전에 그곳을 다녀왔었다. 마침 집에 있던 나는 달려가서 구조현장을 지켜보기도 했었다. ‘하나님, 왜 또 나를 살려주셨나요?’ 이런 일이 너무도 많기에 오죽하면 나는 어느 대학에서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백석역 온수관이 터져서 한 가장이 숨진 날, 나는 난방이 끊기고, 씻지도 못한 밤에 이불을 둘러쓰고, 누가복음을 펼쳤다. 내가 죽음을 지나친 열 번도 넘는 자리에 언제나 나처럼 신앙인들이 숨졌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때도, 백석역 홈플러스 화재 때에도 그 외에도 늘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진실한 신앙인들이 숨을 거둔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며칠 전 내가 다녀온 그 곳에서 나는 살고 아름다운 신앙인들은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그 분들의 영혼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데려가신 걸 거야. 그 순간이 최상의 아름다운 순간이기에 더 이 지상에 두시면 오염될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은 회개할 게 많아서, 때를 더 불려서 다 씻어내야 하니... 때를 불리는 시간인가 보다... 얼마나 나는 오래도록 때를 불려야 깨끗이 씻어낼 수 있기에 이렇게 아직도 이 지상에 남겨두신 걸까?’ 

나는 내 생각이 아주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피를 더러운 우상 제물에 섞은 끔찍한 일, 그리고 실로암에서 쌓아 올리던 망대가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비명만 남긴 채 치어 죽은 열여덟명이나 되는 사람들. 이런 사고와 이런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잖은가. 즉, 살아남은 자들에게 예수님의 명령은 단 하나이다. ‘회개의 삶’이다. 살아남아졌다면 회개하고, 회개한 자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회개의 삶이란 무엇일까? 성도인 내 수준에서 말한다면 앞선 12장의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라 생각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인권이 놀라울 정도로 신장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과학과 문명의 이기와 사람과 인권이라는 명목 앞에서 죽고 죽이는 참사에 더 자주 빠지는 아이러니 속에 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망각하는 세상 속에서 오늘도 남겨진 우리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한다. ‘왜 오늘도 나를 살려주셨을까?’ 라는 질문을 부담스럽더라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