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조 해설(1523년)(6)

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⑫

2018-08-14     주도홍 교수

루터주의를 싫어한 츠빙글리

18조에서 츠빙글리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밝힌다. 츠빙글리는 루터를 “하나님의 성실한 종”(des weidlichen diener gottes),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전사”(ein treffenlicher streyter gottes)로 일컬으면서도, 자신을 루터주의(luterisch)로 명명하는 것에는 진실이 아님을 밝히며 동의하지 않는다.1)

“교황추종자들이 나를 ‘루터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루터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자체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비록 루터를 살아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루터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지 모든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를 바랍니다.…루터와 나와의 지리적 거리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의 위치를 루터와 같은 위치에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신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츠빙글리, 『저작 선집 2』, 186-187) 

츠빙글리는 자신이 왜 루터주의자가 아닌지를 여섯 가지로 밝힌다. 첫째, 츠빙글리는 자신이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를 알기 전에, 아니 보다 앞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를 실천했음을 서술한다. 둘째, 츠빙글리는 교부들의 성경해석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인지델른 목회 당시 교부들의 성경해석에 심하게 의지했었지만, 아인지델른 수도원장이었던 게롤드제크(D. v. Geroldseck)이 교부들의 성경해석에 자주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교부들이 “성경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셋째, 츠빙글리가 중세교회와는 차별화된 오직 성경을 만방에 알리는 시점은 1519년이었다. 1519년 1월 1일 취리히 그로스뮌스터교회에서 마태복음 설교가 결정적이었다. 넷째, 츠빙글리는 마태복음 주석에서 주기도문 강해를 루터보다 앞서 출판했다. 다섯째, 교황청에서 취리히로 특사로 보낸 추기경들은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하기 전에는 츠빙글리를 루터주의자로 정죄하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여섯째, 츠빙글리는 자신을 루터주의자라고 일컬음 받기보다는 바울주의자 아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달라고 호소한다. 

츠빙글리는 루터를 지난 천년 이래 그와 같은 사람이 이 땅에 없을 정도로 성경을 온 힘을 다해 연구한 인물로 평가한다. 교황제가 생긴 이래 루터처럼 용기 있게 로마 교황을 공격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츠빙글리에게 루터의 가르침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내용, 곧 하늘의 보물을 전달할 뿐이었다.

1) Huldreich Zwingli, Huldreich Zwingli’s Werke, erste vollstaendige Ausgabe durch Melchior Schuler und Joh. Schulthess, Erster Band, Zuerich 1828, 249ff; 츠빙글리, 『저작 선집 2』, 180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