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내려놓고 대화 테이블 지켜야 한다”

■ 보수 연합기구 결국 3개로 체계 굳어지나

2018-06-19     이인창 기자

한기총, 통합합의 폐기…한교총 법인 설립 예고
한교총-한기연, 통추위 중심의 대화 이어갈 듯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회장:전계헌, 최기학, 전명구, 이영훈 목사), 한국기독교연합(대표회장:이동석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엄기호 목사)가 연합기구 통합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왔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는 분위기이다. 

통합추진위원회를 각각 만들어 대화 테이블에 앉았고, 불과 한달 전에는 통합 합의문에 서명까지 했다. 하지만 합의 이행이 어렵게 되면서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문서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대화의 여지는 있지만, 진전된 결과가 만들어질지 지금은 회의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기구 통합 또다시 무산 분위기
세 연합기구 통추위 대표들은 지난 5월 10일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호텔에서 비공개 모임을 갖고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서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한국교회를 저해하는 제반문제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조속히 통합을 추진하겠다”면서 “한기총과 한기연은 법인 존속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한교총은 법인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통합 의지를 보여주었다. 

2015년 통합 추진 이후 세 기구가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합의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는 커 보였지만 결국 제자리가 되고 말았다. 

먼저 한계를 드러낸 곳은 한기총. 합의서가 발표된 직후부터 한기총 내부에서는 자격정지 상태인 이태희 목사가 통추위원장직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임원회 결의 없는 서명에 대한 불법 논란 등이 쏟아졌다. 

한기총 임원회는 결국 지난 8일 한기총 현재 정관을 기반으로 명칭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통합추진 원칙을 세우고 ‘한국교단연합추진회’라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사실상 합의문을 폐기하고, 한기총이 통합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화 파트너로서 한교총과 한기연이 이러한 한기총의 결정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현재 정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한기총의 무리수라고 볼 수 있다. 시종일관 한교총과 한기연은 2011년 7·7 정관을 기준으로 회원권을 재심사해 한기총 내 이단성 논란을 일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단 논란이 여전한 한기총과 통합할 경우 회원교단 내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장 합동총회는 여러 차례 한기총 복귀를 타진하고 검토했지만, 결국 이단성 논란 때문에 포기한 바 있다. 통합 추진 당사자들이 교단 내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 한기총 내부의 중소교단들이 주로 대교단들이 참여하고 있는 한교총, 한기연과 통합할 경우 입지가 약회될 것에 대한 염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7·7정관 이후 한기총에 가입한 교단들은 재심사 자체가 불만이자 불안요소일 수 있다. 

한기총의 이런 결정에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낸 곳은 한교총이다. 한국교회 교세의 90~95%를 자임하고 있는 한교총 입장에서는 연합기구 위상을 공고히 할 법인화 추진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게 된 셈이다. 

한교총 대표회장단은 지난 11일 회의를 열고, 7월 20일 법인 설립을 위한 임시총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회원교단에는 법인이사 추천과 이사 분담금 납입을 요청하기로 했으며, 이달말 설립이사 정수를 확정할 예정이다. 
  
통합 논의는 여기서 중단?
공식적으로는 세 연합기구 모두 통합을 위한 협상을 중단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동상이몽이다. 

한기총은 내부 합의조차 안 돼 자중지란 분위기이고, 한기연은 대교단이 빠져나가면서 겪고 있는 운영난을 풀어야 하며, 한교총은 이제는 연합기구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한교총이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오는 9월 장로교단 정기총회 인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이유이다. 

이런 가운데 기구통합을 압박하며 한기총 탈퇴 이야기까지 나왔던 기하성 여의도총회가 어떤 결정을 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기하성 이영훈 총회장은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냈지만, 현재는 한교총 공동대표회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는 한교총과 한기연 간 대화 논의가 활성화될 여지가 커졌다. 지난 17일에는 한교총과 한기연 통합추진위원장들이 서울 모처에서 비공식 만남을 갖기도 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본입장 등을 확인하는 차원이었으며, 조만간 양측 통추위원들이 만나는 자리도 마련될 예정이다. 

한기연 권태진 통합추진위원장은 “우리 단체의 세부적인 부분을 떠나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교총과 직접 대화하고 통합을 위한 방법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교총 신상범 통합추진위원장은 “통합을 위한 어떤 전제조건을 가지고 만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세 연합기구가 기득권을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조금만 더 들어가면 기득권 때문에라도 만나서 대화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기구 통합의 미래는 있나
한교총까지 법인 설립을 하게 될 경우, 보수연합기구 법인은 세 곳이나 존재하게 된다. 5월 합의서에서 법인 존치나, 법인 설립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 부분은 기구 통합을 염두에 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법인 설립을 하면 통합은 쉽지 않다. 각 법인은 까다로운 의결절차를 거쳐 법인을 해산해야 하는데, 결의 자체가 어렵다. 

한교총에서는 한 지붕 두 체제 일환으로, 회원교단 중심 법인과 회원단체 중심 법인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을 대안으로 언급하고 있다. 굳이 법인 해산절차가 필요 없다는 장점 때문이다. 다만 어느 법인을 교단중심으로 할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실제 2000년대 중심 보수교계를 대표하는 한기총과 진보교계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기구 통합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다. 예장합동, 고신 등 보수교단은 WCC 활동을 하는 교회협과 통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결국 한 지붕 두 체제가 합의된 바 있다. 

반드시 통합해야 하며, 통추위까지 두고 있는 세 연합기구이지만, 가야 할 길은 더욱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고 있다. 

한 교계원로는 “대정부, 대사회 역할을 해야 하는 연합기구에 대해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와 젊은 목회자들 무관심이 이대로 가면 연합기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단체의 기득권만 생각하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화 테이블을 떠나면 안 된다”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