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는 댓글에서나…

! 생각해봅시다-무심코 사용하는 용어 ‘성지순례’

2018-06-04     손동준 기자

성경적이지 않은 언어 사용 자제해야

최근 한 독자로부터 정정 요청을 받았다. “기사에 사용한 ‘기독교 성지’라는 용어를 빼 달라”는 내용이었다.

‘방학을 맞아 찾을 만한 서울의 기독교 성지’라고 쓴 대목이 문제가 됐다. ‘성지’라는 표현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쓸 때만 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또한 “뭐가 문제라는 거야”하며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당연하게 써왔던 ‘성지 순례’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봤다.

온라인상에서 훗날 일어날 일을 미리 예견한 글이 뒤늦게 조명될 경우, 해당 게시물에 찾아가 “성지순례 왔습니다”라고 댓글을 다는 것이 하나의 놀이문화가 됐다. ‘성지순례’라는 말이 종교를 넘어 온라인에서도 편만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기독교역사의 발자취를 방문하는 것을 ‘성지순례’라며 아무 거부감 없이 사용해 왔다. 

사전적 정의로는 “종교상의 의미관념 또는 신앙의 대상으로부터 가호와 은혜를 받을 목적으로 각 종교에서 성스러움의 장소로 정한 곳을 찾아 참배하는 것”이라고 나오는데, 무슬림들의 5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하즈’가 대표적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1번 이상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메카를 찾아야 한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다. 불교나 힌두교 역시 각자의 ‘성지’를 신성시 하며 순례를 의무로 여긴다. 

기독교에서 ‘성지’라고 할 때 보통 예루살렘을 떠올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의 배경이 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곳을 ‘거룩한 땅’으로 구분하여 신성시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곳은 삶의 현장이지 예루살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특히 그 안에 자리한 지성소를 신성시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인식을 혁파하셨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그가 서 있는 모든 땅이 곧 거룩한 곳, 성지인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성지는 예루살렘에 한정될 수 없다. 우리가 찬양의 가사로 부르듯이 “내 주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고 거룩한 땅”이다. 예루살렘을 찾는 행위를 ‘성지순례’라며 신성시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않다. 

백석대 장훈태 교수(기독교학부)는 “타종교의 경우 성지순례를 통해 신앙의 대상과의 합일을 기원하고 교조정신 및 종교정신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며 “성지순례라는 용어를 자칫 잘못 사용하면 그곳을 특별한 역사현장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장소자체를 숭배하는 우상적인 장소로 전락될 경향이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성지순례’라는 말 대신 ‘성경역사현장 탐방’ 혹은 ‘성경유적지 방문’, ‘성경현장탐방’, ‘성경과의 여정’ 등의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