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를 배우는 것은 배운 대로 행하기 위함이다

(120) ‘친절’에 대한 탈무드의 교훈

2018-01-31     변순복 교수

유대 현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기부금을 내는 것보다 세 가지 면에서 더 위대하다’고 가르쳤다. 

첫째, 자선을 베푸는 것은 오직 돈으로만 할 수 있지만, 친절은 돈과 자신의 몸으로 행할 수 있다. 둘째, 자선은 오직 가난한 자에게만 도움이 되지만, 친절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자선은 오직 살아있는 자만 돕지만, 친절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도울 수 있다(쑤카 49b). 

자선을 베푸는 것은 선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는 토라의 의무를 이루는 방법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그리고 자선은 기계적으로 의무적으로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을 때, 오직 그 때에만 그 가치가 인정을 받지만, 선함으로 가득 찬 행동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을 돕기 위해 사심 없이 행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가치가 있다. 또한 선행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토라는 넉넉한 손과 관대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라고 언급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고 가르치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계명의 핵심은 사랑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너는 네 자신을 위하는 만큼 이웃도 위하라! 이웃을 도와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의 삶에 행복의 빛을 비추어주라(람반, 에벨 4:1).’ 랍비 아키바는 토라(성경) 레위기의 이 구절을 ‘토라가 가르치는 삶의 가장 위대한 원칙’이라 하였다(버레이쉬트 라바 24:7). 

예수님 또한 성경의 계명을 가르칠 때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 사랑이며,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모든 계명의 기본은 사랑이며, 사랑은 친절로 표현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탈무드 현인들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묻는다. ‘토라를 연구하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느냐?’(키두신 4b, 바바 카마 17a). 독자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해본다면 은혜가 될 것이다. 

모든 랍비들의 대답은 똑 같다. ‘토라를 연구하는 것이 토라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기 때문에 연구가 더 위대하다. 토라를 연구하지 않으면 토라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토라가 가르치는 대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라를 배우지 않으면 토라의 요구를 알 수 없다. 토라의 가르침을 모르면 인생을 바르게 사는 방법을 알 수 없다. 

사람이 토라의 의미를 연구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이루 수 없다. 

그래서 탈무드 현인들은 연구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연결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연구하고 배우는 것은 배워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말씀대로 살기 위함이라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