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 좀 당하고 삽시다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㊲

2018-01-24     노경실 작가

*누가복음 6:27~28>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할 때마다 “이 땅에 살인과 자살의 영이 물러가게 해주세요.”라고 간구하게 되었다. 단 하루도 끔찍한 뉴스보도를 듣지 않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살인과 자살에는 사람 사는 형편만큼이나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요즘 유난히 많이 접하는 것은 ‘무시해서’ ‘무시 당한 것 같아서’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무시를 당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과 느낌에 ‘무시당한 것 같아서’ ‘나를 무시하는 거 아니야?’ 라는 어이없는 주장이다.

최근에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여성을 둔기로 폭행한 남성의 말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현찰이 모자라 담배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데,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B씨가 나를 무시하는 눈으로 쳐다본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잔인한 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 알바 여성이 우연히 밖을 보다가 눈이 마주쳤거나, 아예 그 남성을 봤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남성은 ‘내가 돈이 없다고 무시해?’라며 몇 시간을 기다리며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을 죽을 정도로 보복해서 그가 얻은 게 무얼까? 만약에 무시당했다면 그 무시당한 자존심이 살아났을까? 자존심이란 게 남을 때리고, 심지어는 생명을 빼앗아서 회복되는 것일까?

지난 주에는 한 남성이 여관 주인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무시한다는 생각에 불을 질러 아무 죄 없는 세 모녀 등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렇게 ‘무시당한 것 같아서’ ‘감히 나를 무시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일은 끔직하고 잔인한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뉴스 한 귀퉁이에 실리는 사건사고를 보면, ‘길 가다가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서 폭력’ ‘술 먹다가 무시하는 것 같아서 패싸움’ ‘인터넷으로 게임하다가 무시하는 말한다고 만나서 맞짱 폭력’ 등등 거의 단 하루도 이런 소식이 멈추지 않고 있다.

교회라고 다르지는 않다. 교회 안의 많은 부서에서 헌신봉사를 하다가 틀어지고, 깨지고, 찢어지며, 소란스러워지는 원인 중 하나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나를 무시해?’이다. 원수에게 공격당하는 것도 아니다. 대적자에게 짓밟히는 경우도 아니다. 참소자에게 고발당하는 것도 아니다. 함께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시했느니, 안 했느니’ 하며 싸우는 것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쟤가 좀 잘 산다고 나를 무시해요.’ ‘잘 생겼다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 대학 붙었다고 얼마나 나를 무시하는지…’

그렇다면 권세 있고, 돈 많고, 많이 배우고, 신앙심까지 두터운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할까? 나름대로 조사(?)해보니 기가 막힐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대부분 ‘네까짓 게 감히 나를 무시해?’ ‘감히 그런 곳에서 나한테 이렇게 대해? 나를 무시한다는 거지?’ ‘허이구, 감히 그런 사람이… 나를… ’ 하며 입이나 마음속에 ‘감히 나를!’이라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성경 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을까? 히브리서에는 무시 정도가 아니다. 아예 대놓고 핍박과 조롱을 당하는 기록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브리서11;36~38)”

무시를 넘어서 생명까지 짓밟혔다. 그러나 오직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참고, 참고, 참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나’ ‘나’ ‘나’가 무시당해서, 아니 ‘당한 것 같아서’ 남도 멸망시키고 결국은 자신도 패망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무시 좀 당하자. 네가 얼마나 온유하고 관용이 넘치는 사람인지 세상 사람 모두가 알 정도로 거룩하게 살라고 하셨잖은가.

살다보면 무시 당하기도 하고, 무시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때마다 예수님과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하며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주자. 말씀 그대로 살아보자. 그래서 나는 누가복음 6장의 말씀을 ‘원사(원수를 사랑하고), 미선(나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축(저주하는 자를 오히려 축복하고), 모기(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라고 외우며 살고 있다. 무시 좀 당한다고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변경되는 건 아니니까!

함께 기도

하나님. 물론 무시당할 언행을 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무시할 경우,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여유와 담대함을 키워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