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작은자

2018-01-16     운영자

세상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건 사고의 소식으로 시작된다. 지구촌에는 화재와 수해, 한파와 태풍, 전쟁과 테러의 소식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우리는 가끔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조가 되고 생명을 건지는 뉴스들을 본다. 얼마나 감사하며 고마운 일인가. 물에 빠진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려 구조하는 모습이라던가.

불길에 휩싸인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생명을 구출하는 분들. 길에 쓰러져 있는 사고 당한 사람을 신고하고 구조하는 일은 아름다움 미담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다거나 다수에게 노출된 상황일 때 도움일 필요한데 정작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구조의 시간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게 된다. ‘나 말고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누군가 신고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방관자 효과’라고 부른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 일을 만나게 되면 책임감이 분산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나 아니라도 누군가 돕는 사람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어떤가. 길을 가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혼자 보았을 때 나 외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구조를 하게 된다.

이것을 ‘사마리아 효과’라고 한다. 눅10:25에 여리고성을 향해 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강도 만난 자를 구조하고 도움을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에 ‘우리의 이웃은 누구 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이었다.

제사장도 아니요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도왔다는 것에서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 이다. 우리는 주위에 힘 있는 자보다 우선 약하고 상처 입은 자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누군가 나 대신 도움의 손길을 펴겠지’ 하는 방관자의 입장이 아닌, ‘내가 아니면 누가 저 사람의 이웃이 되겠는가’ 하는 사마리아인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살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화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우리가 우선 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당한 자를 외면한 논리보다 사마리아인의 행함을 우위에 두신 교훈적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새해가 밝았다. 2018년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시간이다. 작년 포항 지진과 진천의 화재로 재산의 피해와 안타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난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고는 한 시도 존재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 작은 자 연약한 자는 누구인가? 내가 작은 자의 이웃이 되지 않으면 누가 이웃이 되겠는가? 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교회가 먼저 이웃의 아픔과 작은 자 소외된 자를 위로하고 소망 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의 손을 잡아 세우는 역할을 다 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