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탈을 쓴 물신주의를 경계하라

한국교회 개혁과제 (5) 물신주의

2017-10-18     한현구 기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돈, 돈, 돈 그것이 문제로다
어딜 가나 돈이 문제다. 정치·경제·사회 어디든 돈 문제가 뿌리 깊다. 하지만 돈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돈을 쓰는 사람이 문제일 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으로 못 하는 일을 찾기가 더 힘드니 누구나 돈을 원하는 게 이상하진 않다.

문제는 돈이 하나님의 자리까지 위협한다는 점이다. 돈의 위력은 세상을 넘어 교회까지 침식해 버렸다. 교회가 ‘개독교’란 오명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실제 교회 내 갈등도 돈이 원인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의 돈 문제는 비단 현시대만의 것은 아니다. 500년 전 로마교회에서도 돈이 문제였다. 종교개혁 당시 독일 마인츠의 알브레흐트 주교는 교황에게 거액을 주고 두 개 교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다. 교황청은 면죄부를 팔고 받은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했다. 결국 돈 문제가 종교개혁을 촉발한 셈이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면죄부는 당시 만연했던 물신주의를 상징한다. 말 그대로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돈으로 사제자리를 사고파는 성직매매 또한 횡행했다.

이제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회는 어디에도 없다. 드러내놓고 성직매매를 자행하는 곳 역시 찾기 힘들다. 하지만 ‘개혁교회가 물신주의를 탈피했는가’라는 물음에는 쉽사리 답하기 힘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문위원장 손봉호 교수는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돈이라고 잘라 말한다.

손 교수는 “돈으로 부패했던 로마교회와 지금 한국교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예배당이 커지고 교인 수가 늘어날 때면 어김없이 돈에 목숨을 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하다”고 경고했다.

‘은총=물질적 축복’으로 변질
한국교회는 돈이 생기면 땅을 사고 건물을 세웠다. 아니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기어이 예배당을 지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배덕만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개신교의 설교는 ‘모이자, 돈 내자, 집 짓자’로 압축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물질의 축복에만 몰두하다보니 예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물신주의 성장만 남은 것이다.

이정배 교수(전 감신대) 역시 물신주의를 가장 시급한 한국교회 개혁과제로 꼽았다. 그는 “루터에게 타락한 중세 가톨릭과 율법주의 유대교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 앞에는 자본주의에 잠식된 개신교가 있다”고 진단했다.

분단 이후 우리 사회는 ‘반공’의 깃발아래 빠르게 자본주의를 흡수했다. 덕분에 기적적인 성장을 맛봤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양산했다. 교회 안에서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 이른바 축복의 복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 교수는 “교회의 존재 양식 자체가 이미 자본주의화 됐다. ‘은총’이라는 단어는 ‘물질적 축복’으로 변질됐다. 지금 기독교의 교리는 중세시대 면죄부보다 더 타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욕망을 교회가 용인하고 면죄부를 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교계에서도 물신주의와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교계 안팎의 자성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 돈 문제는 여전하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는 물신주의가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물신주의가 좋은 언어로 포장될 때가 많다. 부자가 되고 성공해야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식이다. 부를 쌓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스스로 주님과 사회를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합리화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 상황 맞는 대안 필요
이정배 교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강조되는 루터 역시 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루터는 당시 타락한 로마교회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을 뿐 지금 자본주의에 침식된 교회를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교회가 가난해져야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만 명 모이는 교회 하나보다 백 명 모이는 교회 백 개가 필요하다. 더 이상 교회 짓는 일에 몰두하지 말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신도들에게도 결단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국가가 잘못하면 시민들이 불복종 운동을 펼치듯 정말 교회를 사랑한다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물신화된 교회가 있다면 과감히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교회는 점점 몰락하는데 지도자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이제 위기를 자각해야 한다. 성장보다 성숙을 꿈꾸는 작은 교회 운동에 희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득훈 목사는 한국교회가 부자청년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영생의 길을 묻던 부자청년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하시자 갈등에 직면했다.

박 목사는 “스스로를 물신주의가 아니라고 여기는 자기기만의 늪에서 눈을 떠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셨던 것같이 한국교회에도 너희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면서 철저하게 말씀에 직면하는 것만이 한국교회가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