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함정

2017-08-30     지용근 대표

필자가 처음 신입사원으로 조사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1980년대 말은 아직 시장조사 또는 여론조사가 우리 사회에 익숙하지 않을 때였다. 그 때는 지금 흔하게 사용되는 온라인조사 방식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고, 전화면접조사 방식도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근에는 발전된 IT 기술로 인해 컴퓨터로 진행하는 최첨단 전화조사 방식이 도입되고, 온라인조사, 모바일조사 등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선거 때는 녹음된 전화음성을 이용한 ARS조사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덕에 작년 총선 때는 2014년 지방선거 때보다 30% 이상 더 많은 여론조사가 치러지기도 했다. 총선 지역구가 지방선거 지역구보다 훨씬 적은데 말이다.

이렇게 여론조사가 일상화되다 보니 폐해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선거 때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조사 윤리를 망각한 채 왜곡된 표본추출, 설문문항 등이 사용되고, 단체/협회 등에서 특정 그룹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교묘하게 설문문항을 만들어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일도 있다.

여론조사가 대통령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여론조사가 막강한 파워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당의 후보를 여론조사가 결정하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데 여론조사에 의존한다.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30년 가까이 조사 일을 해오면서 한 가지 느끼는 점은 ‘민심은 천심이 아니라 널뛰기’라는 점이다. 대내적, 대외적으로 조그만 자극만 있어도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민심이고 여론이다. 여론정치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분명 국정책임자는 여론정치의 해악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원전과 관련해 정부에서 공론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과정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 국가의 장기적 큰 과제를 여론조사회사가 기획하고 결정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민심은 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는 마치 그 시점에서의 ‘스냅사진’과 같다. 대중의 의견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다. 온도계는 기온을 재는 도구일 뿐인데 마치 온도계가 기온을 결정하며, 현미경은 박테리아를 보는 도구인데 마치 현미경이 박테리아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수많은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올텐데, 오용과 남발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