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클라 수도원

32. 수도원 운동(3)

2016-11-02     황의봉 목사(평안교회)

성녀 테클라(St. Thecla)는 터키 꼰야(신약이 이고니온) 출신으로 사 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터키 남해안에 살면서 실리프케에 세계 최초로 여자 수도원을 창설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주후 9년 이고니 온에서 그 지방 왕자의 딸로 태어나 그리스인 상류 사회의 숙녀로 제우스나 아폴로 같은 자연신을 믿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제1 차 전도여행 중에 사도 바울의 설교(“당신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 사를 지내지만 그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오…”)를 듣고 기독교인으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약혼자와 부모의 고소로 두 사람은 로마 총독에게 끌려가 사도 바울은 태장을 맞은 후 추방 되고 그녀는 배교자라 하여 화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화형을 당할 당시 “오 바울의 하나님이여 이 영혼을 받아 주소서”하고 기도를 드리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끼고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폭우 가 하늘에서 쏟아져 장작불이 꺼지게 되어 그녀는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안디옥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녀도 붙잡혀 경기장의 사자 밥으로 내몰리게 되었는데 굶주린 사자들이 오히려 그녀를 보호해주어 당시 원형 경기장에 모여 있던 관중들과 그녀를 괴롭혔던 군인들이 테클라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화가 난 총독은 다시 그녀를 사나운 황소의 뿔에 줄로 묶고 치마와 블라우스에 불 로 벌겋게 달군 쇠를 놓아 고문하려 했으나 신기하게도 가시광선과 같은 불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와 황소에 묶었던 밧줄을 끊음으로써 황소가 군중 속으로 들어가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또 다시 총독은 그녀를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넣었으나 독사들이 그녀를 피해 도망가는 일이 벌어지자 참다못한 총독은 그녀에게 참 수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참수형이 있기 전에 그녀를 만나 심문하던 총독은 그녀에게 복음을 듣게 되어 “이 여인은 하나님의 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를 풀어 주었습니다. 자유인이 된 그녀는 안티키아(안디옥)에서부터 시리아의 남부 지역으로 걸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테클라가 시리아로 갔다는 소식을 접한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들을 시켜 그녀를 잡으려 하였습니다. 피신하다시피 시리아의 마아룰라 산까지 오게 된 그녀는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커다란 산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산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두 부분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녀는 갈라진 바위산 속으로 새롭게 생긴 길의 끝 지점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녀가 그곳에 혼자 수도사처럼 살게 되자 자연히 그 곳 주위에 살던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곳 주민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길 것을 전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또 그녀는 병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주었고 그들에게 바위산에서 나는 샘물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기도와 정성어린 간호로 병자들이 고침을 받게 되자 그녀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병들고 아픈 사람들은 성녀에게 가보라!” 그녀는 ‘병자들의 어머니(마알루미)’라고 불리게 되어 결국, 그녀의 이름을 빌어 이곳은 ‘마아룰라’라고 불리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아룰라(Maalula)는 ‘입구’라는 뜻 의 아람어입니다. 특별히 이 수녀원은 치유의 은사가 많은 곳으로 알 려져 있습니다. 많은 장애자들이 이곳에 와서 고침을 받았는데 그들이 고침 받은 증거로 남기고 간 목발들이 남아 있습니다. 2008년 시리아를 방문했던 필자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깔라마운(Qalamoun)산의 마아룰라에 있는 테클라 수도원(CHAPEL OF ST. THECLA)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이 생존했을 당시 사용되던 언어인 아람어를 주전 1,000년 전부터 사용하며 간직해 오고 있는 지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