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신㉓귀향을 기다리는 사람들

김창범 목사 / 더미션로드 대표

2016-09-23     김창범 목사

추석이 왔다. 오곡이 익어가는 이 명절에는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귀향의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북한 땅의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살았다. 굶주림과 나라 없는 설움을 피해 오래 전 연해주 지역으로 떠났다. 이들은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였지만, 그 역경을 딛고 오늘날 고려인으로 살고 있다. 또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이 공산세력에 의해 죽음의 땅으로 변해갈 때,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들도 70년이 되도록 실향민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누구나 북한 땅을 그리워한다. 북한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의미한다. 누구나 고향 땅을 영원히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고향을 떠난 탈북자들이 남한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 겨우 20년 안팎이다. 이들 3만의 탈북자들도 고려인이나 실향민들처럼 북한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고려인들과 실향민들이 탈북자들에게 남다른 친밀감과 관심을 갖는 까닭은 돌아가야 할 고향이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이 모두 고향 땅 북한으로 가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통일은 곧 귀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오미는 룻기에 등장하는 모압 여성 룻의 시어머니다.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어 남편을 따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갔지만, 10여년이 지나 가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땅으로 돌아간 나오미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는 한 가정의 비극이 담겨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다는 아픔이다. 결코 순조롭지 않은 삶의 기복을 본다. 그러나 룻을 향한 보아스의 배려와 긍휼로 다윗의 가계가 준비되고 이스라엘의 민족 통일이 이뤄진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이 사건 속에 하나의 아름다운 비단처럼 직조된 것이다. 귀향의 결말은 결국 통일이다.

귀향의 관점에서 통일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귀향은 하나님이 지명해주신 존재의 자리, 태어나고 자라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통일은 단순한 연합이나 통합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시간과 공간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본질과 합해진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지난 세기에 허물어지고 헤어져야 했던 한민족 공동체의 부분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수축되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통일의 궁극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 민족은 외세의 끊임없는 박해에 시달렸고 또 불가피한 흩어짐의 고통을 받았다. 북한 땅에 이런 시련이 온 것은 환경적 조건 때문이지만, 우리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하신 섭리와 계획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8:1) 복음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뜻에 의해 박해와 흩어짐의 과정이 필요했듯이, 이제는 회복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통일이다.

온전한 고향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열려야 하고 하나님의 영이 각자 마음속에 회복되어야 한다. 고향을 찾으려는 심정의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 땅을 한 시도 잊을 수 없는 탈북형제들 또 고려인들과 실향민들이 저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통일의 준비는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귀향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다. 이들 가운데 고려인과 실향민의 첫 세대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그들의 자손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통일의 열기를 그 그리움 속에 다시 지펴야 한다. 북한 귀향 운동이 곧 통일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