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14) 배우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다

2015-11-10     운영자

유대인이 말하는 세 번째 교육원리는 ‘배우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바르게 실행하기 위하여 배운다는 말이다. 실천이 없는 배움은 헛된 것이며, 자신이 위선자 내지는 이중인격자임을 드러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배워서 남 주냐’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듣는데, 이 말은 사람들이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공공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함이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하여 배워야함을 가르치는 말이다.

그런데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무작정 배우고 연구한다면 배움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말리엘의 아들 쉬므온은 학자들의 숲속에서 성장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배우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쉬므온은 학자들이 함께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을 많이 보며 성장하였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은 연구하고 토론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학습하는 활동보다, 학자들 자신이 연구하여 깨달아 아는 대로 실천한다면, 이 세상은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될 것이라 하였다. 특별히 그가 지적한 것은,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위선적인 것을 보았다.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한 학자들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자기중심적이요, 자기 주관적임을 보고 한탄하며 쉬므온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계속하여 가르치기를,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 되라’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말은 많이 하는데,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 믿는 대로 행하여 완전하라 하였으며(창17:1),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하였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그렇듯이, 모르면 실천할 수 없다. 모르는데 어떻게 답을 쓸 수 있는가? 모르면 답이 길어지고 사설이 붙게 마련이다. 즉, 쉬므온의 가르침은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운 대로,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연구도 연구한 것을 삶에 적용하기 위함이지만, 성경 연구는 더더욱 그렇다고 현대 성경교사들은 힘주어 말한다.

여러분은 왜 성경을 배우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배우는가? 정말 귀한 생각임에는 틀림없다. 쉬므온의 가르침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이론적, 지적 추구에 대한, 보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실제적이며, 우리의 일상생활과 삶 가운데서 분초마다 이루어야 하는 그 어떤 것, 실천하여야 하는 어떤 것, 삶속에 표현되어야 하는 살아 있는 말씀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추상적인 만남이 아니며, 꿈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만남이다. 성경연구는 성경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재를 나누는 귀중한 시간이다. 다시 말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며, 삶이며, 실천이어야 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금 할 것과 후에 할 것을 알려주신다.

그렇다면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사람과 말씀을 설교하는 설교자는 어떠하여야 하는가? 한국교회 성경공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한국교회 설교자와 성경교사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보고 하는 말이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말은 참 잘해.” 이는 무슨 뜻인가? 말한 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입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주는 증인된 삶,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웃으로부터 칭송받는 삶을 살 때 믿는 자는 더하여 질 것이다(행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