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된 한국교회, 부활하고 싶다면 ‘을’의 자리로 내려가라

고난주간 특집 정체해 있는 한국교회의 오늘을 진단한다

2015-03-24     이성원 기자

지난 해 12월 28일 싱가포르로 향하던 에어아시아 소속 항공기가 인도네시아 자바해에서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당시 선교 활동을 위해 탑승했던 박성범 씨와 이경화 씨, 딸 박유나 양이 한국인 탑승객으로 피해를 당했다. 이들은 선교활동을 위해 가던 선교사 가정.

당시 사고를 전한 이 뉴스의 댓글에 이들 선교사 부부의 죽음을 조롱하고 한국교회를 비방하는 악플이 수없이 달려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자기를 희생하며 선교와 봉사활동을 해온 이들이 비방을 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 일은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 처한 형편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갑질하는 교회’ 비난 팽배

최근 우리 사회에 노출된 한국교회와 관련된 뉴스들을 점검해보면 사회적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드물다. 오히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촉발시킨 ‘갑을관계’의 논란을 한국교회가 재연하는 형국이다.

지난 2월 5일 SBS는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VIP 손님이었던 목사가 직원을 1시간 넘게 무릎 꿇게 하는 갑질 행세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 보도에 따르면 이 목사는 매장에서 1년에 수천 만 원씩 옷을 사는 단골손님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물건을 받아오는 과정에서 실수한 직원이 VIP 고객인 자신을 망신시켰다며 무릎 꿇고 사과하게 했다.

이 사건은 그 즈음에 잘 알려진 한 기독교복지재단 목사가 음주 운전 후 경찰관에게 폭언을 퍼붓고 난동을 부린 사건과 연관되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앞서 1월에는 동작구의 한 교회 교인이 불법주차를 하고도 도리어 협박한 일이 인터넷 상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다가 뉴스로까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 A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거주자 우선 주차공간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전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자 차량을 견인시켰다. 예배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았던 차주인 B집사는 나중에 견인된 것을 알자 A씨에게 보복성 멘트를 했고, 다음날에는 그 교회 장로가 A씨에게 전화를 해 거주자 주차라인을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것. A씨가 이 사실을 인터넷상에 올리자 교회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폭주했다.

이밖에도 교회 세습 논란, 불투명한 교회 재정, 성폭력, 목사의 고액 사례비에 대한 세금납부 논란 등은 건전하고 사회봉사에도 앞장서는 교회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차갑다 못해 혹독하게 만들고 있다.

영향력 강해진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사회적 논란의 이슈에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선교 초창기에 ‘을’의 처지에 있었던 교회가 이제 부흥하여 ‘갑’의 위치에 서게 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19대 국회의원의 종교 분포도를 보면 개신교 101명(41%), 가톨릭 58명(23.6%)으로 기독교 계통이 64.6%인 반면 불교 34명(13.8%), 원불교 2명(0.8%)으로 불교계 인사는 14.6%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4급 이상의 공무원, 3급 이상의 경찰관, 총장·이사장 등의 교육자, 장성급 이상의 군인, 임원급 이상의 경제인들, 언론인들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영향력 있는 직급 3만1천800명에 대한 종교를 조사한 ‘대한민국 파워엘리트’(2006)에 의하면 기독교 40%, 천주교 22%, 불교 17%다.

대학교의 종교 분포도를 보면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설립된 88개 대학 가운데 신·구교를 포함한 기독교 계통의 학교 수는 34개에 달해 여타 종교를 압도한다.

지난 2009년에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코스피 상장사 704곳의 임원 1만3384명의 인적 사항을 분석한 결과 종교를 가진 응답자의 42.3%가 기독교라고 답했다. 이것은 평균 기독교인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다. 지난 2005년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으로 상징되는 분당구에 개신교인이 전체 인구의 26%를 차지했고 그 다음이 천주교(19%), 불교(14%)였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새 ‘갑’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자연히 그 책임을 무겁게 져야하는 위치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올바른 갑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갑질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난주간을 맞아 한국교회는 갑의 자리에서 을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김재성 교수는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갑을관계에 있는 갑이 을에게 강요하고 피해를 입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번 고난절에는 낮아지신 예수님을 기억하여 혹시라도 기독교 교회가 갑의 지위에서 위세를 떠는 일이 있으면 안될 것”이라며 고난주간을 이렇게 보낼 것을 제안했다.

“예수님은 외식을 질타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숨길 수 없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안과 밖을 똑같이 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들과는 달리 친히 어린 양으로 희생하셨습니다. 갑을관계로 얼룩진 오늘날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의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고난주간의 정신 회복해야

고난주간은 종려주일로 시작된다. 십자가 사역을 위해 예루살렘성을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새끼 나귀를 타심으로써 말을 타고 입성하는 여느 정복자들과 다른 섬김의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십자가의 죽음이 오히려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졌듯이 한국교회는 낮아질 때에 오히려 높아지는 부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에서 가장 갑의 자리에서 위세를 떨쳤던 중세 기독교가 종교개혁을 필연적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는 “세상은 남들 위에서 권세를 부리는 자들 중심으로 움직여지고 그런 리더가 되기를 원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마 20:25)라고 지적하셨다면서 “주님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섬기는 자, 종이 되는 자로서의 리더십을 가져야 하며, 이것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기독교만의 특성”이라고 밝혔다.

위기는 항상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차가운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책임 있는 갑의 영향력을 기대하는 또 다른 애정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기회에 한국교회가 스스로 개혁하며 고난과 부활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정체 상태에서 오히려 부흥으로 가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복음주의협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는 은퇴 이후 지난 7년 동안 계속 강변교회에 부활주일날 가서 설교해왔지만 이번 만큼은 고난주간에 가서 설교하기로 했는데 그 이유를 “그만큼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고난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며 참다운 고난 후에 찬란한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고난입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고 고난은 복음의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무시하는 복음은 가짜 복음이고 고난을 무시하는 삶은 복음적인 삶이 아니라는 것이죠. 왜 그렇게 신구약에서 멸시, 천대, 간고, 질고, 슬픔, 아픔 등 이런 고난을 자세히 묘사하는 이유가 뭡니까?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고난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고난 없는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 목사는 “초대교회사에서 순교와 고난의 스데반이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없었고, 안디옥교회도, 세계선교도 없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고난당한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가 없었다면 한국교회도 없었다”면서 “십자가는 영광이 아니라 멸시 받는 것이며 우리는 그걸 받으며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이 정작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의미 있게 다가오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깊고 어두운 고난주간의 묵상과 실천 속에서 높고 찬란한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