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정신분석적 고찰

김충렬 교수 한국실천신학회

2014-11-11     운영자

평화는 인류가 가장 고대하는 주제이지만 아직도 그 평화는 이룩되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개인의 차원에서 정치 집단에 이르기까지 협력으로부터 전쟁에 이르는 전체적인 행위 영역의 스펙트럼 속에서 생존해 왔다. 여기에는 가장 보편적인 협력의 극단이 평화의 상태이며, 파괴적인 분쟁의 극단이 전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와 전쟁’의 현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인류는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고, 전쟁으로 평화를 유지하여 ‘전쟁과 평화’는 이제 바꿀 수 없는 두 얼굴처럼 되어버렸다.

평화는 그 종착이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평화가 정착되면 전쟁은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평화는 오지 않고 있다. 불행히도 전쟁은 문명의 탄생 이전부터 인간이 끊임없이 겪어온 경험의 일부라는 사실로만 남고 있다. 이처럼 평화는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오늘날 그 연구하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구조적인 폭력이 연구를 이끄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현실 적용으로서 분쟁의 조정론이 각광을 받게 되었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이는 그 근본적인 위협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단순한 평화의 원리와 힘의 논리에 치중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평화는 일반적으로 평안하고 고요하고 조용한 상태로 알고 있다. 이 평화는 갈등과 분쟁이 없고, 더 나아가 현재 삶의 상태를 뒤흔드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의 요란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평화는 그 성격의 복합성 때문에 간단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평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때로는 상호 모순된 모습으로 표출되고, 그 개별 개념에도 일치되지 않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로 평화는 학자에 따라 특정한 학파나 전문영역의 종사자들에게서도 다르게 이해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평화의 개념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수준에서 더 나은 이해를 시도하고자 한다.

평화는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힘의 논리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이런 평화는 사실상 힘에 의한 평화가 주된 것으로 집약되었다. 그리고 그런 평화는 신학의 샬롬적이고 그리스도적인 평화가 아닌 것이었다. 결국 이런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화에 방해적으로 작용하는 심리적인 특성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대개 갈등과 대립, 지배와 종속, 그리고 분쟁과 폭력이 문제로 드러난다. 갈등과 대립은 주로 부정성에서 비롯되고, 지배와 종속은 권력에의 의지에서, 그리고 분쟁과 폭력은 파괴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이원론적 구조를 해소하기 위하여 정신분석적 대응을 시도해보면,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 되는 부정성, 즉 열등감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등과 대립은 우월성을 지향하는 점에서 비롯되는 특성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소의 적극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약자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지배와 종속의 문제에서는 억압의 특성에 주목해 그것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사랑의 섬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섬김에서는 지배와 종속의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분쟁과 폭력에 대한 극복으로서 화합과 조화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합과 조화에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인격의 어두운 그림자인 악(惡)이 작용하여 심리적인 기반을 흔들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편리한 수단을 가지고는 분쟁과 폭력을 일삼는 악을 도저히 정복할 수 없지만, 사랑을 기반으로 한 곳에는 화합과 조화가 생겨나 평화로워진다는 점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