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웁살라 대주교 죄더블롬의 노력

쉽게 풀어가는 에큐메니칼 운동 (7)

2013-04-24     운영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흐름은 초창기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통해서 앞에서 이미 고찰되었다. 이제는 초창기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초창기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로 스웨덴 웁살라의 대주교였던 나탄 죄더블롬(Natan Soederblom, 1866-1931)의 노력을 보기로 한다.

죄더블롬은 초창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 국제연맹의 창설에 고무되어 세계의 도덕적 회복을 위해서 에큐메니칼 모임을 제안했다. 전 세계에 기독교 정신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널리 확산시키자는 것이 죄더블롬의 주장이었다.

죄더블롬이 생각했던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1.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람들과 국가들이 서로 단결하기 위해서 공통의 교리와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하자는 것, 2. 사회적 상황들의 갱신을 위한 기독교의 원칙과 행동을 세우는 것, 3. 기독교의 양심을 위한 공통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죄더블롬은 에큐메니칼 협의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에큐메니칼 협의회는 기독교를 대변한 영구적이고 대표적인 성격을 가져야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죄더블롬은 제1차 ‘삶과 일 운동 세계대회’를 총괄 지휘했다. 제1차 ‘삶과 일 세계대회’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것은 죄더블롬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죄더블롬은 주로 ‘삶과 일’ 운동에 적극 참여했지만, 당시 에큐메니칼의 모든 운동에도 많은 관여를 했다. 1927년 ‘신앙과 직제 운동 세계대회’에도 죄더블롬은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재적인 공통의 과제들에 대해서 함께 노력하기 위해서는 영구적이고 대표적인 성격을 가지를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으며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도 이를 인정했다.

죄더블롬의 확실한 목표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에 대해서 기독교가 가져야할 공통의 과제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기독교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협의체는 영구적이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체여야 했다. 이런 죄더블롬의 노력이 ‘삶과 일 운동’과 ‘신앙과 직제 운동’이 서로 협력할 길을 모색했던 1937년의 일련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경석 교수 / 남서울대학교
독일 보훔(Ruhr University Bochum) 신학과(Dr. theol)
현재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