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문화 극복하기

2002-01-13     
2000년대 들어와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엽기’라고 하는 단어이다. 이제 ‘엽기’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의 현상과 흐름을 대변하는 중요 언어가 되었으며, 지금도 성행하고 있고, 급기야 사회 전반에 걸쳐 엽기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특히 인터넷에서 엽기의 인기와 영향력은 과히 폭발적이어서 사진, 광고, 미술, 장신구, 놀이 등 모든 면에 걸쳐 그 한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엽기라고 하는 단어가 지닌 사전적인 의미(기괴한 것이나 이상한 일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일)와는 달리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고 수용하고 있다. 엽기는 잔혹하고 기괴한 것에서부터 무엇인가 색다르고 참신하며, 톡톡 튀는 것에까지 두루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엽기를 좋아하는 네티즌이라는 의미의 ‘엽기즌’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고 돌변하는 ‘엽기 토끼’도 등장하였으며, 심지어 ‘엽기 발랄하다’라는 정체불명의 신조어까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 전반에는 이같은 엽기문화가 성행하고 있는 것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엽기문화에 열광하고 여기에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 유행어가 당대 사회의 밑바닥에 흐르는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때, 엽기는 무엇인가 잔혹한 것,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충격적인 것을 경험해 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자신을 드러냄으써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같은 욕구의 표출은 결국 엽기문화라고 하는 또 하나의 문화현상을 양산해 낸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엽기문화가 지니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지닌 폐해성은 너무나 크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심각한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왜냐하면 엽기문화에 빠져든 청소년들은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심한 일탈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다든지, 같은 학급 친구를 폭행치사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엽기문화가 지닌 상상을 초월한 폭력성과 광기 그리고 잔혹성이 그대로 청소년들의 행동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큰 문제는 모든 매체가 엽기적인 내용으로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려하고 있기 때문에 그 피해의 정도가 너무나도 쉽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엽기문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하는 선정주의 속에서 상업화되어감에 따라 엽기문화는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엽기문화에 대해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혹자는 “엽기 신드롬에는 사회에 대한 응전의 몸짓이라는 최소한의 논리도 없으며, 웬만한 자극으로는 새로움도 충격도 얻지 못하는 세대들의 자극 인플레이션 증후군”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혼돈스러운 세상에 대한 대안이 되어야 할 문화가 세상의 혼돈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엽기문화가 지닌 희극성과 비극성”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엽기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엽기문화의 폐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는 엽기문화를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여기에 적합한 대응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엽기문화의 확산은 역설적으로 보면 올바른 삶의 방향과 진정한 가치관을 제시해주는 기독교의 역할과 사명이 더욱더 중요해졌다는 점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저들의 영혼은 자신의 삶을 인도해주고,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면서 구원을 향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저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에 복음의 밧줄을 던져 구원의 방주에 올라탈 수 있도록 전도, 문화사역, 컴퓨터 선교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진리만이 엽기문화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그 피해를 입고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자들에게 참다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며,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신웅목사(신길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