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과 물량의 압력에 제 목소리 잃어가는 진보그룹
시청 앞 시국기도회로 본 한국교회 진보권의 과제
촛불정국 두달 동안 복음주의 운동권의 약진 두드러져
교회협 총무 진보적 연합기관 대표로 정체성 회복해야
지난 3일 시청 앞에서 열린 시국기도회에는 목회자 수백여 명이 참석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행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하고 광우병 기독교대책회의가 주관했다. 주최측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기도회였다고 자평했지만 시민들의 눈에는 타 종교와 비교해 가까스로 ‘면피’한 행사로 보였다. 안타까운 것은 신진 복음주의 운동권의 활약이 두드러진 반면, 진보진영의 분열과 소극적 대응이 눈에 띠었다는 점이다.
반면 70~80년대 민주화를 주도하며 개혁을 외치던 그룹의 활동은 미진했다. 기장만이 시국기도회 전, 교단 자체적으로 기도회를 마련하고 시청 앞 행사에 합류했을 뿐 타 교단의 조직적인 참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진보권의 쇠퇴가 눈에 띠는 상황이었다. 민주화에 앞장섰던 기독교계의 진보적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주최측 관계자는 진보권의 참여가 조직적으로 일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교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을 꼽았다. 오는 9~10월 각 교단이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소위 정권 교체의 시기에 눈 밖에 나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촛불정국에 대한 기독교 보수권의 분노는 엄청나다. 교단에서 교권을 쥐고 있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고 배후설을 기정사실화하며 좌익세력에 대한 엄단을 촉구하고 있다.
감리교의 경우,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교단장 명의로 발표한 이후 연회 감독들과 교단 장로들로부터 엄청난 곤혹을 치루고 있다. 감독회장 명의로 나온 이 시국성명에 대해 연회감독들은 “감독들의 동의 절차를 무시했다”며 반발하고 있고 장로그룹에서는 “좌익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며 사상검증으로 몰아가고 있다.
교단들의 입장이 이렇다보니 한창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40~50대 목회자들도 교단의 중심세력으로 진입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눈밖에 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교회협 실무자들은 현 시국에서 교회협이 너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임명규회장과 권오성총무가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회협을 대표하는 총무가 주인으로 목회자들을 맞이하지 않고 객으로 기도회를 관망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권총무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한 진보권 인사는 “교회협이 대형교회의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총무의 행동이 눈 밖에 난다면 좋을 것이 없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최근 보여준 진보진영의 갈등과 퇴보양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진보그룹의 내부 결속과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사회정의의 전면에 섰던 교회협의 정체성 회복과 총무의 대표성 확립, 복음주의권과 소통하는 비정치적이며 신앙적인 사회운동의 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