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모든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교회출석 4개월만에 전도 시작해 전도왕에 오른 최명자 전도사
1979년 당시 세 아이의 평범한 엄마였던 여인 최명자. 병명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안좋은 몸 상태로 인해 안 해 본 것이 없었지만 주위에서 교회 나가보라고 해서 생전 처음 교회를 찾았다.
그녀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 사람들과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자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모른채 구원의 근본도 모른채 그저 목사님과 교회가 좋았던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 전도는 한 주간 만나는 사람마다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예수님을 자랑하게 됐으며, 교회에서의 심방도 빠지지 않고 따라 다니게 됐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전도를 하다 보니까 하나님 말씀을 100% 믿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여인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셨고, 복음증거 하다 보니까 소명감을 갖고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전도에 전념했다. 그녀의 전도는 이렇게 첫 번째는 그저 받은 은혜와 감격을 ‘자랑’하는 단계였다. 이후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바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간증집회를 한 이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1996년도 5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미국 영주권을 아무 조건없이 선물로 받아 한국과 미국을 다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교회를 하게 된 사연도 우연이자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긴다. 고양시 행신동에서 목회를 하는 여자목사가 “교인이 한 명도 없어 너무 힘드니 맡아 달라”고 했으며, 그녀는 “전도하면 되잖아요” 했지만 노력해도 안 된다고 했다. 안타까운 현실 중 하나는 대부분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을 전도해 교회에 정착시키면 얼마 지나 큰 교회로 가고 싶다고 떠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너무도 상심이 되고 실망을 했지만 어느날 기도하는 가운데 “지금도 구원받는 백성이 있음에 족하라”는 음성이 들렸다. 이후에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도왕’ 소리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녀가 전도와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느낀 것은 ‘기도 생활’의 중요성이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것인데 기도 없이는 안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미국에 가면서도 미국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지만 어느날 미국에서 간증할 때 정신이상자들이 나온 것을 보고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저런 영혼을 맡겨주시면 교회를 하겠습니다” 고백하게 됐고, 지금은 기도하면서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요청하는 교회에는 한 주간을 세미나 기간으로 정하여 전도이론과 함께 실습까지 나가 전도의 열매를 함께 나누고 있다. 낮 시간에는 전도에 대해서 가르쳐서 실습을 병행한다면 저녁시간은 부흥회로 말씀을 나누고 새벽시간은 뜨겁게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이 세미나를 마치고 나면 참석자들의 얼굴이 곧 전도지가 되며, 전도자 이름이 붙는다. 또한 중보 기도팀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 주고 전도 대원 리더가 되는 것이다. “눈만 감으면 전도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는 최 전도사는 교회 개척과 새생명전도학교 등 이 모든 일들은 자신을 위해서 시작했으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한다는 다짐 속에 오늘도 믿지 않는 영혼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총회에서 ‘전도왕’까지 시상한 그녀이지만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어제까지 전도한 것은 지난간 것이고, 오늘 다시 전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교회에서 받은 전도패를 다시 들여다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