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1세기 한국교회와 사회를 말한다-기초로 돌아가자

(상)성경대로는 옛말...실용주의 잣대로 진리훼손

2006-09-20     윤영호
 

사행성 오락게임 수위 도박수준 ‘교회성장만 외칠 때’ 지역공동체는 균열

교회실용주의 맹렬 비판한 조나단 에드워즈 이후 미국 영적각성 운동 활기


반석 위의 집을 지으라는 예수님의 비유는 기초가 바르지 않으면 그 위에 세워진 그 어떤 건축물이라도 삽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이 제아무리 땀과 피를 흘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기초가 바르지 않다면 허무하게도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이다.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지반(地盤)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낄만하다. 사회지도층으로부터 새어나오는 각종 부도덕과 비윤리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받을만한 종교지도자의 타락현장을 지나치면서 우리는 한국교회를 포함한 사회공동체의 기초가 과연 예수님이 지적한대로 ‘반석’인지 아닌지 자기점검을 시작해야 한다는 무언의 경고성 메지지를 듣게 된다. /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을 지혜로운 자라고 명시한 예수님의 판단은 분명 옳다. 그 수고가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너질 집을 지은 자는 그 기초를 모래로 선택했기에 우매한 자였다. 그 수고가 헛됐기 때문이다. 반석은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했다. 예수님을 기초로 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따라서 우매한 일이고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질 일들이라는 얘기다. 겉으로는 마치 예수님을 기초로 세운 거물처럼 엄청난 위용과 세련미를 갖추며 그 누구라도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는 다목적 다용도 건물로 찬사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종국에 무너짐으로써 그 위선과 허위, 즉 예수님을 기초로 하지 않은 거짓됨을 낱낱이 드러낼 것이라는 말이다.


온 나라를 홍수로 만든 ‘바다이야기’

사행성 성인 오락게임의 인허가를 놓고 뒷돈과 권력이 어느 정도나 개입됐는지 연일 매스컴을 달군다. 바다이야기 운영 업주들은 이같은 난리통에 더 이상 영업이 어렵다고 보고 전국 업소 주인들이 긴급회의를 하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이다.


이들이 인터넷 메일로 관계당국에 보낸 메일에는 “(바다이야기 게임에 연루된)공무원 10명을 폭로하며 (자신과)자폭하겠다”고 당국의 수사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은근히 청와대에만 화살을 날리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나겠지만 분명히 이같은 거대한 수익이 보장되는 게임사업이 투명한 과정을 거쳐 인허가 받고 더구나 수년 동안 운영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실 바다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이다. 사행성 성인게임이 대한민국 성인들의 주요 놀이기구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가까이 개인용PC에서 일명 고스톱과 트럼프를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 어느 한 두 명인가. 개인용PC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성인게임방이 동네여기저기 비집고 들어서면서 우리 지역은 어린이 청소년게임천국에서 이제는 성인게임천국으로 발빠르게 바뀌고 있다.

바다이야기를 ‘권력형 비리’로 몰아세우는 정치권의 순발력은 매우 당연하다. 정치인이므로 정치적인 역학관계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승리를 맛본 야권은 수세의 여권을 집중 공격하면서 청와대의 기(氣)를 꺾느라 연일 안간힘이다.

하지만 교회는 어떤가. 정치인이 정치관점으로 힘의 역학관계를 계산할 때 교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교회가 정치적인 힘의 역학관계를 점치면서 이 기회에 OO가 힘을 얻어야 한다는 식의 비기독교적 판단은 하지 않았는지 생각할 일이다. 문제는 사행성 오락게임이 끼친 사회공동체 부식현상이 부도덕과 비윤리라는 모습을 띠고 나타나고 있는데 교회는 아무 반응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초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교회가 지난 100년 동안 쌓아온 위대한 신앙공동체들이 사행성과 부도덕 비윤리에 노출되면서 여지없이 쪼개질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도 교회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연약한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교회들의 방조가 곧 교회의 무너짐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비치된 작은 통. 100원짜리를 넣고 돌리면 이미 통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 중 하나가 굴러 나오도록 만든 기계이다. 조잡해서 금새 버리기 일쑤지만 아이들은 무엇이 나올까 조바심을 내며 동전을 넣고 연신 돌려 댄다. 청소년이 많이 찾는 PC방. 각종 인터넷 게임 가운데 상당수가 사이버머니를 통해 무기를 구입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레벨을 부여받아 게임에 접속한다. 소유하고 있는 무기들을 내놓고 판매하는 사이버 공간도 있어서 원하는 물건들을 사거나 팔 수 있다. 결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가르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이제 본격적으로 사행성 게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치밀하게 계산된 시스템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해야 할 백성들이 무방비로 방치되어 영혼이 부패되는 줄도 모르고 감각적 즐거움의 노예로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바다이야기는 영혼을 갉아 먹는 세속의 즐거움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고발한 단 한 개에 불과한 사례이다. 이곳저곳에 세워진 한국교회들이 성장에만 매달릴 때 지역공동체는 이렇게 조직적으로 좀먹어 들어오는 사단의 악한 술책에 내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종교적 실용주의를 공격한 에드워즈

우리는 미국의 영적 대각성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설교가 조나단 에드워즈가 변질된 사회공동체에 무감각한 대신 교회의 안정적 성장만을 생각했던 당시 교회를 얼마나 비판했는지 이번 기회에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에드워즈는 당시 종교적 실용주의 대하여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의 업적을 보면서 감탄해 마지않는 분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의로운가 판단하실 때 그 사람의 업적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이 신자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그 신자가 이룬 업적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에드워즈는 기초를 잊은 미국 노샘톤의 교회에 대하여 기초에 충실할 것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가 환기시킨 기초는 십자가와 예수그리스도였다. 한국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관점 대신 종교적 권력의 눈과 세속적 정치인의 눈을 더 신뢰하게 된 것 같다. 정치적인 목소리는 뚜렷해진 반면 영적인 각성을 호소하는 청렴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은 까닭이다.

에드워즈가 사역하던 노샘톤은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정착해 살던 곳으로, 이들은 열심히 일해서 나름대로 경제적인 안정을 구가하고 있었다. 교회도 평온해서 신앙이란 단지 예배하며 성경을 읽고 토론하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밝은 미래만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고생해서 이룬 업적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어서 교회는 자신들의 고생을 알아주어야 하고 밝은 미래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는 실용적 기관으로 전락해 있었다.

바로 그런 곳에 에드워즈는 영적인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듣기에 거북한 ‘죄인’이란 책망을 섞어가며 그는 ‘기초’에서 사라진 십자가와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회복하도록 영적각성을 주도했다. 지금 한국교회와 사회의 모습은 흡사 에드워즈 당시와 비슷한 점이 많아 그의 메시지를 음미하는 것은 좋은 기회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