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을 안 하는 이유

기독교 대안학교운동의 길목에서<4>

2006-07-14     운영자

<유영업목사·독수리기독중고등학교 교감>


“과제만 열심히 하면 됩니까?”


가정방문을 했을 때 한 아버님께서 물으신 질문입니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 중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느끼는 불안감 때문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독수리학교 학생들은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예체능계는 예외이지만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사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저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권위의 문제입니다. 권위는 가르침에서 나옵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그 권위를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는 말이 왜 나오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태는 재앙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생님으로부터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배울 필요가 없는 게지요. 학원에서, 과외수업에서 학교보다 훨씬 앞서서 배우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선생님을 존경할 수 있겠으며 그 권위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권위가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집니다.


둘째는 인격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고, 연약한 사람을 진심으로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입니다. 학교와는 달리 학원은 학생들의 전인적인 요소 중 학습이라는 측면에서 집중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주요 목적입니다. 부모님들이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바람이 그렇기 때문에 학원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학교는 학습만이 아니라 가치관, 역사관, 윤리관을 가르쳐야하는 인격의 전당입니다. 그런데 학습적인 측면에서 이미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보다 학생들이 훨씬 앞서가다 보니 다른 이야기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학습 면에서의 가르침이 무시되면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가르침의 면들이 송두리째 멸시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현상입니다.

셋째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학생에게 있어서 학습은 가장 중요한 일이며 친구 사이의 중요한 의사소통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30-40명의 학생들과 함께 학습하면서, 협력하기도 하며 경쟁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하며 인정받기도 하고,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쓴맛을 고루 경험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학습은 이런 면에서 매우 건강하고 진취적인 관계 형성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소통의 통로로서 가장 중요한 학습이라는 일거리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짐으로 인해 학습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는 친구를 맺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관계를 맺는 방법이 연약한 친구를 함께 놀리는 것이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나, 극단적인 외모 꾸미기 등에 있다면 미래의 사회 속에서 건강한 일원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가 책임 있게 감당해야할 학습이라는 장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고 친구와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2월말에 발표된 OECD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은 GDP대비 2.9%(2002년 기준)로 30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회원국 평균치 0.7%의 무려 4배나 웃도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공교육비는 GDP대비 4.2%로 23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분명 교육의 열풍은 이 민족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기 고집대로’가 아니라 ‘권위에 대한 순종’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자기사랑’이 아니라 ‘이웃사랑’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학원중심의 지식학습’이 아니라 ‘학교중심의 전인학습’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