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해방60년 기획: 순교신앙 계승과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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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해방60년 기획: 순교신앙 계승과 자화상
  • 윤영호
  • 승인 2005.06.1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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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발견된 공산학살 희생자 700여구의 순교자들.



 평가와 반성: 계승돼야 할 순교역사와 자화상


“상실된 순교신앙 회복 위한 교회적 대안마련을”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의 능력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피를 토하며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쪽복음은 안으로 권위적인 유교, 봉건사회를 냉정하게 질타했으며, 밖으로는 외세의 무분별한 칼날에 저항하는 애국의 영성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이 같은 안팎의 과정 속에서 신앙인들은 ‘땀방울 대신 핏방울’을 흘려야 했고, 구국훈장 대신 채찍의 상처만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복음으로부터의 자유는 결국 순교자가 흘린 피의 결과요, 보다 근원적으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그리스도 보혈의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성을 간직한 부패한 인간으로 살고 있다. 이것은 절대진리인 복음을 소유하고 그 능력을 누리는데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기독교의 현대사는 매우 흥미롭다. 복음능력으로 주창돼온 각종 결과들이 실제로는 인간들의 죄성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실례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1945년 8월에 끝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는 전쟁이 일어났고, 이어 반세기 동안 분단국가라는 멍에를 계속 지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로서 복음의 어떤 능력을 증거했는가” 솔직하게 자문자답할 필요가 있다.

그 답은 자명하다. “복음능력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다”라는 답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죄성을 가진 부패한 인간들의 생각은 늘 권력지향적이어서 게토화를 추구하고, 금단의 열매를 취할 정도로 절대로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결과만을 늘 보여주었다는 역사의 기록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기독교가 보여준 것들, 단적인 예로 교회성장과 인구대비 교인수의 증가들이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대표적 결과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성장? 그것은 오히려 인간죄성의 역설적 증거

최근 한국기독교의 이슈로 등장하는 교회제도개혁이나 메가처치(초대형교회)의 기업형 경영논리, 비리에 연루되곤 하는 기독교인 문제와 윤리도덕 실종 사례들은 우리가 그동안 추구했던 복음이 역으로, 인간들의 잣대에 의해 좌우됐음을 드러내 준다. 복음이 우리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복음을 편의적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 이용했다는 말이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개인으로서의 순교자와 집단으로서의 교회’를 검토하면 바로 드러난다.

‘개인/교회’문제는 상당히 예민하다. 교회의 모든 결정에는 (머리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권위가 있어서 그에 속한 지도자 및 성도들은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교회의 결정을 개인인 성도가 준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과연 그것은 개인의 책임일까 아니면 교회의 책임일까.


 

좋은 예를 들어 보자.

‘심사참배는 국가의식이라는 규정에 따라 우상숭배가 아니어서 참배할 것’을 결의한 1938년 일제치하의 한국기독교 결정에, 지금은 순교자로 추앙받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불순종하여 그 결의에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장대현교회의 길선주목사 생전모습

교회는, 악한 정부도 하나님이 세웠다는 믿음으로 가결했지만 개인은 결의에 불순종하여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복음의 진실인지 이미 알고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유신체제 당시 한국기독교는 두 그룹으로 분열됐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측과 정치/종교분리를 내세워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는 측인데, 결과적으로 전자로부터는 고문에 의한 고통과 의문사들이 잇따랐고,후자로부터는 엄청난 교회부흥이 ‘성장축복’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타났다. 양쪽 가운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곳은 어디일까. 혹자는 ‘둘 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청산, 교회는 소극적 혹은 외면
최근 학계에서 ‘해방60년’을 특별히 조명하는 이유는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화두로 삼는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갑론을박 때문이다. 기독교는 과연 여기서 제외될 정도로 청산할 것이 없을까.


학계는 일제시대 심사참배를 가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당시 교회지도층의 해방 후 행적을 주목하며 그들이 교회의 법이 정한 규정대로 문책을 당했는지 추적해 왔다. 종교적인 용어로,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지켰는지도 주목했다.


그러나, 해방 후에 소련/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 아래서 좌우익 대립을 겪으며 대부분의 교회들이 반공을 주창하며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정부아래 모이게 된다.

미국에 기대어 성장발판 마련한 친외세세력

이와함께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한 서구교회들의 후원으로 한국기독교는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 원조에 기대어 성장의 발판을 다지게 됐다. 즉, 친일행위에 대한 어떤 책임도지지 않고서 해방 후에도 교회지도자로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나는 신사참배 한 죄인”이라고 참회한 고(故)한경직 목사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추앙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반복음적 행위를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던 지도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한경직목사의 이같은 참회의 고백이 있은 후에 그 누구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여하튼 한국기독교는 소련 점령의 북한에서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이념을 대변하는 단체로 활동하였고, 미군정 아래서는 우익을 옹호하며 반공을 주창하는 세력으로 자리를 잡는 한편 5.16군사쿠데타 이후로는 정교분리 정책에 따라 비정치적 영역인 교회성장에만 전념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부터는 이른바, 최고 위정자들을 위해 교회가 마련한 ‘국가조찬기도회’를 실시하며 기득권층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현재까지 한국기독교는 철저한 자기부정의 회개를 선택했다기보다 안정적 토양 위에서 성장과 부흥을 보장받는 경향이 짙어 여러 측면에서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

사회의 또 다른 지배층 `교회`
일제시대와 공산체제 아래서 교회는 타협하기도 했으며 피난 가서는 색깔공방과 이념문제로 또 다시 갈등을 빚는 등 열강의 세력 다툼장소가 되고 있던 한반도의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기득권 유지존속에 여념이 없었다고 학자들은 비판의 화살을 멈추지 않는다.


현대 한국교회의 역사는 유감스럽게도 기득권층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기업가들의 회사가 성장하고 정부 위정자들의 권세가 당당하면 해질수록 그와 함께 교회의 성장도 가능했고, 그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 및 교회 지도자들의 권세 또한 커졌음을 알게 된다.

또 사회적으로 엘리트가 인정받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도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며 초대형교회의 주축 멤버들의 면모를 살펴볼 때 사회적으로도 기득권층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같은 현상들이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이 ‘분단’임을 전제로 생각해야 한다. 분단은 모든 활동을 ‘반공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보도록 규제하고 통제하는 근거가 된다. 군사독재 시절, 이따금씩 발표되는 간첩단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공산당을 향한 적개심을 키워왔으며 입으로는 복음축복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정권멸망을 바랬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분단의 환경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복음의 능력을 분단이라는 환경 아래서 제약하고 재단(裁斷)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복음의 초월성이 통용되던 기독교초기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숱한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를 내면서까지 복음의 운동력을 계승하며 그 시대의 절대성을 주장하던 그 어떤 이념들도 부정(상대화)했다. 이 경향은 비록 일부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일제시대, 공산치하에서 그대로 계승됐었다.


분단의 반사이익층이 통일을 바랄까?
그런 교회역사가 지금 현대시대에서는 ‘분단’이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매우 왜곡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환경 아래서 기득권을 가지게 된 교회가 과연 자신에게 그같은 안락함을 안겨다 준 분단상황을 매우 열심히 바꾸려고 노력할까 반문할 때 사실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기득권으로 인한 안락함을 맛 본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일부 신앙인의 집약된 힘으로 막혔던 분단의 담이 어느 정도 완화돼 민간교류가 활성화되어 빈번한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60년, 어떤 의미에서는 분단60년을 맞은 우리 교회는 이제 분단극복이라는 대명제 아래 복음의 초월성을 증거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학계 일부에서는 강대국 미국을 활용한다든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활용하든지 한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는 힘의 균형을 따라서 정책을 추진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성경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수완 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에서 찾으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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