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방60년, 한국교회 순교사와 한반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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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60년, 한국교회 순교사와 한반도의 미래
  • 윤영호
  • 승인 2005.05.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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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센씨 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실천하다가 순교한 손양원목사(맨 좌측)와 가족들이 처음
    부임하고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1> 총론 : 피로 새긴 한국교회 선교역사



삶 속의 ‘경건’과 ‘예민한 역사의식’ 요구 

쪽복음을 던지며 대동강가에서 참수당하기까지 복음을 전한 토마스 선교사의 전도가 한국선교의 모델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후 계속된 서양선교사들의 헌신을 예고하는 첫 발이었음과 동시에 앞으로 엄청나게 나타날 한국 초대기독교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와 순교를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복음 안에서 일어난 이들의 ‘순결한 피’가 우리나라 한반도를 점점 ‘말씀한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연합하게 하고 일치하게 하는 것이 말씀의 역동적 본질이라고 할 때 앞으로 이 말씀한국의 과정 속에서 통일한국은 필연적 결과로 나타난다는데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 그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이것은 분명 우문(愚問)이다. 강력한 복음역사(役事)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죽음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나”라고 한 번 더 묻는다면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다양한 생존방식이 존재하는 한 죽음만은 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복음이 지시하는 ‘그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기독교가 현재처럼 성장과 부흥을 누린 이면에는 복음의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이름없는 성도들이 있었다. 복음의 방식은 이미 예수님이 그렇게 사심으로써 우리에게 제시된 방식이다.

이웃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 위정자에 대한 생각과 종교적 신념을 달리하는 종파들에 대한 그의 결정들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생활방식이 세상과 복음 가운데 어느 부분에 치우쳐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낸다.


예수님의 삶 가운데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사회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정치정당을 결성하거나 시민단체를 만들어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시위에도 가담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시 일어난 모든 정치적 행동들을 반대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적어도 헤롯과 당시 위정자에 대한 그의 태도를 통해서 볼 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상대방이 사용하는 칼이 정치적인 칼(=힘에 의한 폭력)이라고 해서 똑같이 정치적인 칼로 응수해서는 않된다는 예수님의 태도만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지라도 종국에는 ‘매우 정치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의도와 달리 부패해서 공의와 정의를 내동댕이친 정치그룹은 그의 순수한 행동마저 용납하지 않았고 마침내 정치범에게 만 선고하는 ‘처절한 십자가 형’을 언도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건 말건 ‘그들은’ 우리를 정치적인 위협존재로 인식하고 그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적인 방법, 즉 정치적인 법률 적용을 통해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세계 기독교사는 뒤로 하고서라도 한국 기독교사만을 되돌아보면, 매우 영광스럽게도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그대로 투영돼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게 된다. 손양원, 주기철 등 우리 기억에 문득 떠오른 순교자들의 죽음을 생각해 보자. 특정 정치그룹에 가담해서 반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당한 일인지 그도 아니면 구국충정으로 공산지도자 테러에 몸을 날린 결과 죽은 것인지를 말이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들을 ‘반역’이란 죄목으로 처형(=순교)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기독교인의 정치활동을 ‘비기독교적 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의 역동성은 우리들이 사는 모든 범주를 총망라해서 개입하기 때문에 그것이 이데올로기든 정치적인 파벌그룹이든 사회문화 및 경제영역이든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재단한 것뿐이다.


순교자들의 방식이 ‘영광스럽게도’ 예수님을 닮은 이유는, 그들의 대항이 매우 종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자들은 그들을 ‘매우 정치적’인 위협존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해방60주년을 맞은 올 해 복음 때문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

순교는, 좁은 의미에서는 말씀한국의 완성을 위해서 반드시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외세와 이념의 강퍅함에 목숨을 포기한 것이요, 넓은 의미에    주기철목사 순교기념비
서는 하나님나라 도래라는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이
데올로기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한 모든 사악한 영들에 대항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모델이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산 것이 결과적으로 영예로운 지위를 획득하게 한 것이었으리라.


우리가 잘 아는 존 스토트목사는 예수님의 정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규정하면, 정치는 통치의 학문이다…그것은 사회변혁을 위해 권력을 얻는 것이다…좁은 의미에서 예수님은 결코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조직적으로 정치에 항의하지 않았고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는 조치를 일체 위하지 않으셨다…그러나 그의 사역전체가 정치적이었다. 그가 선포하신 하나님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로서 그 사회가치관과 표준에 도전을 가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순교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신앙을 연단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현실적으로 볼 때 매우 절망적인 순간에 도달했으면서도 그 절망을 이겨나가는 방법으로 죽음을 불사한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 명쾌한 결단을 하도록 했을까. 여전히 말씀한국으로 가는 기나긴 과정이 남아있어서 자신들이 또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어떻게 보면 기회주의적인 판단도 가능했을 터이지만 무엇이 그같은 ‘거룩한 결단’을 하도록 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과 늘 밀접한 생활을 했던 그들의 ‘경건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소동과 혼란 가운데 있던 격동의 한반도 상황을 꿰뚫어 보는 ‘예민한 역사의식’이다.


미국 산타바바라의 웨스트몬트대학 교목 벤 패터슨목사가 지난 2002년 무디지(紙)에 기고한 ‘기도는 왜 하는가’(Why pray?)에는 경건에 대한 문제를 다루며 기도의 중요성을 소개한다. 그는 영적전쟁의 중요한 축으로서 ‘기도’를 말하며, 굴러가는 바퀴의 축에 비교한다.


특별히 그는 마가복음 3장14-15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지시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라고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가지 임무를 주셨다. 첫 번째는 단순히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잘 한 후에야 나가서 나머지 두 일들도 하게하셨다. 즉,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모든 일들은 단순히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부터 시작된다.”


패터슨목사는 현재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기도라고 하면서 “우리가 간구하던  목적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것을 얻기까지 이루었던 기도”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의 임재를 항상 체험하며 확신하는 생활을 꾸준히 유지한 것이야 말로 순교자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일 것이다.


또 하나는, 민감한 역사의식이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사사들을 보면 무척이나 예민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빈약한 나라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강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위정자들의 각성과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는 대목들은 바로 선지자, 예언자들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예언자들의 촉구를 거부한 위정자들의 자세는 어떠했나. 이스라엘과 정책적으로 궤를 같이 하는 형제나라와 동맹하거나 아니면 매우 강한 나라에 군사적 동맹을 맺어 ‘더 큰 힘’으로 맞설 것을 주장하곤 했다. 그래서 결국 말 않 듣는 예언자는 유배되거나 처형(순교)당했다.


예언자들의 목적은 기득권층이 바라는 튼튼한 왕권을 가진 이스라엘 유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적용돼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샬롬의 왕국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눈앞의 일에 급급하기 보다 더 넓고 먼 곳을 바라보아 때로는 축복을 선언했고, 때로는 ‘징계’를 선언했다.


눈앞의 문제만을 바라보던 기득권 지배자들은 예언자들의 선언내용에 따라 그들을 환대한 반면 대부분은 그들을 처형한 것이다.


해방60년의 한반도에는 여전히 순교자의 피가 땅 속 깊숙이 흐르면서 하나님나라에 필요한 우리들의 헌신을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한국교회가 ‘경건’과 ‘역사의식’을 균형적으로 쌓아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추진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지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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