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소리를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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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소리를 선물합니다"
  • 이현주
  • 승인 2005.04.04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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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성결교회 `새생명 고운소리교실`의 고도난청자 재활사역

 


뒤늦은 봄이 길을 재촉한다. 마른 나뭇가지에 움트는 싹과 지저귀는 새소리, 시원하게 느껴지는 한 줄기 바람까지 세상 만물은 제 소리를 내며 생동하고 있다. 도시의 소음에 묻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푸념하지만 작건, 크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이다. 우리는 때로 그런 큰 축복을 아주 하찮게 여기며 지나치는 실수를 한다.

세상에 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자동차가 내는 클락션 소리도 TV에서 쏟아내는 노래소리도 모두 소중하다. 그들은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침묵 속에 버려진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소리를 듣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토요일 오후, 신촌성결교회(담임:이정익목사)로 엄마와 아이들이 모여든다.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가슴속에 한숨이 가득했던 과거가 그들에겐 있었다. 해드폰과 같은 장치를 머리에 쓰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문화아카데미를 찾은 아이들은 신촌성결교회가 고도난청자들을 위해 마련한 ‘새생명 고운소리’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도 난청자들에게 희망을 드립니다.” 교회 앞에 걸린 문화아카데미 현수막은 이 짧은 말로 고운소리교실을 홍보하고 있지만 의학적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고도난청자들이 어떻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12시부터 열리는 수업은 한 시간씩 청각장애 아동과 자원봉사자 교사, 그리고 학부모 이렇게 3명이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2시 수업에 참여한 한준이는 다섯살 개구쟁이다. 자원봉사자 주은선집사는 한글교재를 펴고 아이와 스티커로 사물을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한준아 우리 사과나무를 만들어 볼까?”

개구쟁이 한준이는 딴청을 부리면서도 선생님의 수업을 곧잘 따라한다. 한글도 척척 찾아내는 한준이는 여느 또래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고도난청이라는 사실과 아직까지 말을 잘 못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준이가 세상에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지난해 8월. 우연히 알게 된 골도청음기를 착용하고 난 후부터 아이는 소리를 듣게 됐다. 병원에서 인공와우수술을 권했지만 한준이 엄마는 결국 기도와 골도청음기로 아이의 목소리를 찾아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 아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고 지금 짧은 단어를 구사하고 있다. 물론 여느 정상적인 아이들처럼 일반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아이의 청력장애를 알고 하늘이 노랬다던 한준이 엄마는 지금 웃음을 되찾았다.

고운소리교실에서는 40여명의 학생들이 생명의 소리를 찾았다. 달팽이관이 없어 아예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준빈이와 예준이, 그리고 급성 퇴행성 난청으로 보청기 착용조차 불가능했던 40대 이형복씨까지 이제는 듣고 말하는데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소리를 찾아준 골도청음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제품을 선물한 사람은 신촌성결교회 전창집사. 잘나가던 대기업 연구원에서 개인사업가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진동이 머리뼈를 타고 뇌에 소리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이 기술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란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인도와 브라질, 일본 등을 오가며 수출 판로를 찾았고 국내 농아학교 등에서 임상실험을 거치며 제품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의학적으로 귀가 아닌 다른 기관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없어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형식적인 답변이었다.

이미 의학계에서는 모든 소리를 귀를 통해 듣는 것으로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고 보청기기술을 대다수 선진국 다국적 기업이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만들어낸 진동식 청음기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집사가 뛰어넘기엔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분명 농아인들은 들린다고 했고, 말을 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지만 제도에 갇힌 세상은 그의 기술을 철저히 외면했다. 더 놀라운 것은 달팽이관이 없는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청각장애인도 이 기계를 통해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리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미 사업에 투자된 비용은 수십억원. 막대한 손해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2000년 12월이었어요. 이 사업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농아인들을 찾아 다니며 창고에 쌓인 기계들을 나눠줬지요. 그 때 정릉에 있는 한 꼬마 아이가 기계를 머리에 착용한 뒤 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집에 가려는데 아이는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죠. 평생 처음으로 소리를 들었던 아이는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 일은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하나님은 제게 이 길만을 허락하셨죠.”

그 후 지금의 모델인 MSE-120이 탄생했다. 보청기가 ‘왕~왕~’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확한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데 비해 MSE-120은 신호가 머릿속 깊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질되지 않고 깨끗이 뇌까지 도달한다. 이 제품의 개발 후 다시 한 번 열정을 가지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뿐이었다. “도대체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그는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이 일에 매진한 것은 준빈이를 만나고 부터였다.

준빈이는 의학적으로 들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아이였다. 건강한 아이를 낳고자 둘째를 출산했지만 예준이 역시 청각장애였다. 두 아이 모두 달팽이관이 없었다. 보청기도, 인공와우수술도 할 수 없는 거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준빈이의 부모는 매일 한숨과 눈물의 나날을 지샜다. 그 아이들에게 골도 청음기를 착용케 하고 인천 집까지 찾아가 놀이터에서 듣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소리교실이 시작됐다.

단 한명이라도 자신이 개발한 기계를 통해 소리를 듣고 희망을 찾는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가족들 모두 반대했지만 그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소리를 찾아주는 일을 머출 수 없었다. 준빈이 사례가 교회에 알려지면서 신촌성결교회에서는 전창집사에게 교실을 내어주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주었다. 그리고 한명으로 시작된 수업은 농아인의 크리스마스 노래공연이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탔고, 시작된 지 반년만에 전국 각지에서 소리를 찾아 올라오는 사람들이 40여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준빈이 엄마는 최근 다음카페 ‘소리좋다’에 이런 간증을 남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았어요. 40개월된 준빈이와 27개월된 예준이 모두 청각장애 1급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준빈이는 골도청음기를 착용한 후 10개월만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졌어요. ‘학교 갔다 왔어요’ ‘도시락을 먹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이제는 왜 더 빨리 말이 늘지 않는지 조바심을 내곤 한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뿐. 하나님이 허락하신 또 다른 축복이 있다는 것만 믿고 살아갑니다.”

이 모든 사건을 지켜본 소리교실 봉사자들은 그저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자신들도 반신반의했던 기계의 효능에 놀라고 아이들이 듣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성숙해지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란다.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의 재활에 힘을 기울이는 전창집사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봉사자 주은선집사는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계를 개발하고 수리하는 전집사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하셔서 뭐가 남겠어요. 기계를 비싸게 받아서 남기시는 것도 아니고….”

그 때 전집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남잖아요.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듣고 말하는 아이들 말이에요.”

불과 마흔명 남짓한 사람들이 지금 골도청음기로 소리를 찾았지만 이들의 인생은 곧 120명 갖고 전체의 인생이다. 그리고 전창집사와 신촌교회는 이들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다.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사역이 되어 버렸어요. 다만 소망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고운소리교실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목소리를 찾고 새 생명을 얻길 바랄 뿐입니다.”

신촌성결교회 ‘새 생명 고운소리교실’은 매주 토요일 무료수업을 진행한다. 거제도에서 동해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봉사자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기적을 믿기 때문이다.

고도난청으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전창집사와 고운소리교실 봉사자들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리’를 선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물은 복음의 씨앗이 되어 더 큰 나무로 자라날 것이라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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